장소 : 사간동 현대화랑
기간 : 2015.1.6.~2015.2.22.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태성군.
그 후로도 건강하지?
아빠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아빠는 다정해서 정말 좋아”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다면서.
아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더욱 더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보내줄게.
안녕
아빠 중섭.
-태현 형이 공부할 때는... 방해하지 말고 밖에서 놀도록 하렴.
이중섭의 굴곡지고 스산한 삶 속에 보석같이 존재하는 아내 남덕과 두 아들 태현, 태성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편지.
그간 여러 차례 이중섭 전시를 기획했던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올해의 첫 전시로 그의 은지화와 가족에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다시금 이중섭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헤어진 1952년 말 이후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에게 편지와 그림을 보냈다. 1955년까지 이어진 수십 편의 편지 중엔 아내 ‘남덕(마사코)’군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많았다.
전쟁이라는 상황, 그리고 아내의 건강 문제로 결국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고독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매일 당신, 너희들 생각뿐이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러니 걱정마라, 언젠가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살 수 있을 거다, 조금만 참자고 쓰고 또 썼다.
편지 주변의 그림에는 단란하게 손을 잡거나 자연의 상태로 모두 껴안고 춤을 추고 있거나, 즐거웠던 때의 모습을 그렸다. 아이들에게 배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두 아들에게 동시에 애정 듬뿍 담긴 편지를 따로따로 쓰기도 했다.
전시장 한 층은 그의 은지화로 가득하다. 이중섭이 담배갑에 들어 있는 은박지(사실은 알루미늄박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오산학교 시절부터라고 한다. 생각을 옮겨 담듯 잘 편 은박지에 그림을 눌러 그리고 물감을 칠한 뒤 닦아내어 철선 같은 독특한 효과를 얻었다. 수많은 작품을 그렸겠지만 없어진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 그 안타까움이 더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은지화 중 주목받는 것은 아무래도 MoMA 소장 작품 3점이 아닐까 한다. 1955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 아서 맥타가트가 이중섭 개인전에서 구입한 것을 뉴욕현대미술관에 보냈고 1956년 소장품으로 결정되었다.
신문을 보는 사람들, Number 84(1950-52), Incising and oil paint on metal foil on paper, 10.1x15cm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전시된 다른 은지화 작품들 중 많은 것이 가족을 만날 희망으로 밝고 풍성하고 기쁨에 차 있다.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주로 모아 보여주고 있지만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스스로 음화라고 불렀던 것들도 몇몇 눈에 띈다.
아이들에 둘러싸인 부부, 종이 위에 은지에 새김, 유채, 9x15.2cm
은지화와 편지 외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 유화, 채색화, 드로잉, 엽서화 등을 볼 수 있다. 또, 2층 전시장 한켠에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남덕 여사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편집되어 상영되고 있다. 영화는 일본 전역에서 2014년 12월부터 상영했다고.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종이에 연필, 유채, 25x37cm
제 몸으로 불을 당기고 뜨겁게 살다 간 사람. 그림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고 또 그러기에 가족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어서 괴로웠던 사람. 안타까웠던 사랑을 담배갑 포장지와 편지와 엽서에 쏟아 넣었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열광하는 것을 보면 아직 한국 사람들은 낭만적인가보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관람료 일반 5천원 학생 3천원. 방학이라 사람이 많다. 설 연휴에도 전시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