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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질 속에 숨 쉬는 기억속의 추상 <송현숙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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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송현숙 개인전
전시기간 : 2014.11.14.-12.31
전시장소 : 서울 학고재
글 : 박영택(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송현숙은 바탕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덧칠하는 전통 템페라 화법으로 몇 가닥의 선을 그었다. 결정적인 단 한 번의 붓질로 이루어진 이 단호한 그림은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한 그림도 아니고 형식적인 추상화의 붓질로 아니다. 그 선들이 모여서 기이한 이미지를 자꾸 연상시켜준다. 추상화이면서 동시에 내용과 이미지를 선사한다. 

서구 추상미술, 모더니즘이 어법에 따른 형식주의 추상이면서도 동시에 토착적이고 무속적이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한 자락을 자꾸 연상시키는 구상화이기도 하다. 녹갈색의 바탕에 두 개의 선에 의해 지탱되는 굵은 나무토막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나무의 일부는 흰 천에 의해 감싸여져 있다. 마치 병든 나무를 치유하는 듯 하거나 죽은 나무를 염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단색으로 균질하게 마감된 표면은 시공을 초월한 적막함을 연상시킨다. 그 공허에 불쑥 수평의 선, 나무가 등장한다. 

붓질만으로 이루어진 송현숙의 추상화는 기둥, 나무, 천 등을 연상케 한다. 특히 명주천이 나무토막을 감싼 장면은 흡사 굿에서 연출하는 저승길 같다. 붓질한 바탕 면 위에 다시 붓질이 얹혀 투명하게 비춰지는, 섬세한 신경 막 같은 이 ‘베일링(veiling)’은 화면을 홀연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만든다. 

반복되는 도상들, 몇 번의 붓질로 이루어지는 이 그림은 무속적인 분위기를 처량하고 음산하게 풍긴다. 폭발적으로 튕겨 나갈 것 같으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선의 조율은 전적으로 필력에서 나온다. 집중적이고 정신적인 붓질의 경로와 그 획의 숫자로 자족되는 이 그림은 서구 모더니즘의 환원주의적 방법론을 연상시키지만 기이하게도 추상적인 붓질이 모여 한국인의 무의식의 지층에 자리 잡은 한국적 원형의 코드, 상징적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떠올려준다. 

이 붓질에 의한 도상들의 조합에 우리는 씻김굿과 민화와 무속적 이미지들을 연상한다. 작가는 굿에 대한 체험을 붓질만으로 이루어진 추상회화로 보여준다. 망자의 길로 보이는 천, 한을 연상시키는 매듭, 정주와 정박을 뜻하는 기둥과 말뚝, 치유와 죽음, 탄생과 염을 상기시키는 천 등이 반복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70년대 파독 간호보조사로 건너가 일했던 경험이 이와 같은 그림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의 붓질이 기둥이 되고 천이 되는 등 변이를 거듭하면서 이미지와 붓질 사이를 넘나든다. 이 붓질은 또한 청각을 자극한다. 탱탱하게 감겨지거나 날리는 소리도 들린다. 단호하게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붓질은 주어진 평면 안을 벗어날 수 없는 회화의, 붓의 운명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서의 치열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그 모든 것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귀결된다.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 사는 자의 귀소 본능, 정박하지 못하고 떠도는 자의 심경, 이산의 감정, 시골집에서 보낸 유년기의 추억, 그 설화와 원시성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너무도 내력적인 추상, 붓질 그림이다.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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