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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로'의 상태로 환원된 정물화 <조르조 모란디: 모란디와의 대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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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조르조 모란디: 모란디와의 대화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14.11.20 - 2015. 2. 25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는 20세기 전반 이탈리아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지만, 가장 난해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누이와 살던 집, 그리고 성인이 되어 살던 집, 이 두 곳을 거의 떠나지 않고 똑같은 항아리와 물병, 상자나 기껏해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을 반복해서 그렸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모란디 미술관(Museo Morandi) 소장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모란디 작품 가운데 현상적인 세계에 대한 무수한 경험의 층과 인간지각의 애매함, 리얼리티의 모순과 상대성, 무한한 변수에 의해 달라지는 차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후기 작품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모란디는 20세기 미술의 유파의 기세가 드센 유럽에서 어떤 특정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볼로냐 미술아카데미에서 에칭 전공 교수로 지내고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수상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대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둔자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는 시대의 맥락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일까.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51, 캔버스에 유채, Museo Morandi, Bologna-Italy (V.783)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39, 캔버스에 유채, Museo Morandi, Bologna-Italy (V. 241)


모란디에게 있어 정물화는 회화의 구조와 정수를 밝히고, 존재의 근본과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르였다. 그의 정물화는 시각적 경험에 관한 것이며 자연에 대한 이해에 대한 것이다. 단순화된 형태와 모노톤의 세련된 색조로 채워진 그의 작은 캔버스에는 유럽의 전통, 근대성, 지역성과 국제성, 구상과 추상 등의 복잡한 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평면 회화의 근대적 질문에 대한 상념에 빠져 감상하다가도 문득 프레스코의 질감을 느끼게도 하는 것이다.


조르조 모란디, <조개껍질이 있는 정물>, 1930, 동판에 에칭, Museo Morandi, Bologna-Italy (V.inc.69)
모란디는 2차대전 중에 조개껍질(shell)을 소재로 한 정물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의 주된 소재였던 일상의 사물들이 아닌 소라나 고둥 껍데기의 나선과 불규칙한 윤곽 형태에 매료되었던 듯 하다.


형태를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그것을 탐구한 모란디의 정물을 보면,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하고자 했던 세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란디가 집착에 가깝도록 반복시킨 일상의 소재들은 약간의 변주는 있을지언정 평면 위에서 공간과 형태, 빛과 색에 대한 연구의 대상물이 되었다.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41, 종이에 연필, Museo Morandi, Bologna-Italy (TP. 1941/5)

다양한 형태의 크기의 병을 골라 레이블을 떼고 흰색, 회색 등의 무채색 페인트로 칠한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주전자를 목재 색깔의 페인트로 칠한다. 각 물체가 가지는 물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고 완전한 제로 상태의 형태로 환원시켜 평면속의 공간과 물체의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환원적인 과정을 추상화하는 단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51 캔버스에 유채, Museo Morandi, Bologna-Italy (V.788)
전시장 한켠에는 모란디의 작업실을 차지하고 있던 희게 칠한 길쭉한 유리병과 목재처럼 보이는 금속재질의 주전자와 그릇, 방울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조르조 모란디, <비아 폰다차의 정원>, 1958, 캔버스에 유채, Museo Morandi, Bologna-Italy (V. 1116)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말년의 풍경화들은 정물화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의 실험, 극단적인 및의 대비와 낮은 채도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색의 하모니가 돋보인다.




조르조 모란디, <꽃>, 1958 종이에 수채, Museo Morandi, Bologna-Italy (P.1958/1)



그림의 작은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노화가의 집념이 발산하는 힘은 작지 않다. 사물은 그저 형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일 뿐, 그가 애착을 가진 것은 추상적인 형태 그 자체와 대기중 입자-샤르댕의 정물에서 포근함을 담당하는 그것-의 부드러운 흐름이 만드는 공간과 시간이었을 것이다. 정물화를 수단으로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우주를 간결한 형태로 담아내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모란디가 국내에서 그리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고 또 큰 규모의 전시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찾아봤으면 좋겠다. 현대미술의 이해에 대한 관점을 떠나서, 시끌벅적한 연말연시의 분위기에 지칠무렵 현대사회의 과잉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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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전시관 아래층 왼쪽과 오른쪽 두 전시장 중 모란디의 작품은 사실상 왼쪽에만 전시되어 있고 오른쪽 전시장은 국내 화가들의 정물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
조르조 모란디: 모란디와의 대화>라는 전시제목에서 1부는 조르조 모란디이고 2부는 모란디와의 대화 즉, 한국 화가들의 정물 작품 중 모란디와 연결이 가능한 것들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모란디에게 영감을 받은 동시대 작가들, 모란디와 유사한 태도로 사물에 접근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상봉(1902-77), 오지호(1905-82), 김환기(1913-74), 박수근(1914-65), 황규백(1932-), 김구림(1936-), 최인수(1946-), 설원기(1951-), 고영훈(1952-), 강미선(1961-), 신미경(1967-), 황혜선(1969-), 이윤진(1972-), 정보영(1973-) 등의 독특한 정물/오브제 작품을 볼 수 있다. 

글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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