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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칠기, 그리고 내일의 가능성과 저력 - 한국나전칠기박물관 개관전<한국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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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한국나전칠기박물관 개관전 <한국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
전시장소 : 한국나전칠기박물관
전시기간 : 2014.11.1.-2015.4.19.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곱게 다듬은 기물면에 칠을 반복해 올려 갖춰진 부드럽고 탄탄한 질감과 광택. 자개를 일일이 다듬고 오려 선과 면을 만든 장식의 화려한 형태와 빛깔. 송나라 사신 서긍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다(極精巧, 細密可貴)’고 극찬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고려의 나전장식과 칠 기술은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1980년대까지는 나전칠기가 장롱과 문갑, 상 중 하나가 한 집에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성행했다. 이층장, 삼층장, 나비장을 가지고 있었던 집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열기가 많이 식었다. 그만큼 대중이 칠기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예전에 비해 줄었다. 

지난 11월초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이 개관했다. 나전칠기의 저변이 많이 좁아진 요즘 박물관의 개관은 반가웠다. 아마도 칠기의 과거와 현재를 직접 작품을 보고 조망해 볼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은 ‘한국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을 개관전의 하나로 꾸렸다. 조선시대 말기부터 근대까지 활동하며 새로운 도구의 도입과 기법의 섬세함과 효율을 향상시킨 전성규(全成圭, 1880~1940)의 나전칠기 작품과 우에노미술학교 칠공과에서 근대식 공예교육을 받고 근대 예술관을 우리나라의 칠기에 접목시킨 강창규(姜昌奎, 호는 창원(菖園),  1906~1977)의 건칠작품을 시작으로, 요즘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다채로운 작품들이 모여 있다. 이 전시는 근현대 나전칠기와 건칠, 채화칠기의 변화와 경향을 한 공간에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선과 빛이 주는 근현대 나전칠기의 다양한 세계

 전시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성규의 <나전칠 금강산그림 대궐반>(1938년 전후 추정)이다. 전성규의 진작으로 확인된 첫 번째 작품으로, 근대 나전칠기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검은색의 칠 바탕에 끊음질로 이중 구획선을 긋고 해포문을 채웠다. 구획선 안에 곡선의 면을 살린 연화당초문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중심에는 금강산의 풍경이 원근감있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근대 사경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칠기의 특유의 견고한 질감과 끊음질과 줄음질의 자유로운 사용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나전칠기의 명인으로 불리웠던 그의 솜씨를 짐작케 한다. 


전성규 <나전칠 금강산그림 대궐반> 121.1x85.3x35.5cm (전시 모습과 작품세부)


근대에서 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김봉룡(金奉龍: 1902~1994)의 작품도 전시돼있다. 이 가운데 1988년에 만들어진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경대>와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화장대>는 흥미롭다. 
19~20세기 초반에 사용된 경대의 형태를 재현한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경대>와 현대 좌식 화장대인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화장대>는 곡선의 줄기와 면이 강조된 꽃, 그리고 잘 재단된 자개의 빛과 함께 근현대 여성들의 변화한 가구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나전칠기의 기종과 문양의 변화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서도 드러난다.


김봉룡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경대>24x36.5x19.5cm 와 <나전칠 장생당초무늬 화장대>85.3x34x169cm


전시에서는 확장된 현대 나전칠기의 다양한 작품 영역과 경향을 보여준다. 일단 기종이 함과 장, 반상과 같은 전통적인 기종은 물론 오브제, 과기, 관모형 합, 찬합 등으로 넓어졌다. 문양소재와 전체적인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문양소재와 디자인은 물론, 반복된 기하학문과 자개를 얇게 끊어 빈 공간 없이 면 전체를 덮은 선문, 물고기모양의 과기와 자개를 이용한 비늘 표현 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이광수(李光秀:1949~), 박강용(朴康龍: 1964~), 장춘철(張春哲: 1960~), 김상수(金相洙: 1960~)등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은 이러한 경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시실 안에 전시된 나전칠기 작품들



한편, 이러한 작품 경향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기본 골격인 백골을 제작하는 방법과 칠의 재료와 올리는 과정 그리고 세부 기법인 자개를 얇게 끊어 선을 표현하는 끊음질, 곡선과 면을 표현하는 줄음질이 그것이다. 현대 나전칠기 작가들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작업방식은 철저히 고수하면서, 작품세계는 점진적으로 확장해나갔다.

건칠, 재료와 칠의 질감이 주는 부드러움의 무게

이 전시에는 색채와 칠의 질감이 돋보이는 단칠기와 건칠기도 함께 볼 수 있다. 단칠기와 건칠기는 나전칠기와 함께 주요 칠기 영역 가운데 하나이다. 칠이 올라가는 횟수에 따른 칠기의 질감과 색채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문양장식이 중심인 나전칠기와는 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강창규를 비롯한 근현대작가들의 건칠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건칠기는 목기인 나전칠기나 단칠기에 비해 대중화된 편은 아니다. 아마도 가구와 그릇을 주로 선호했던 근현대 우리나라의 칠기 문화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던 탓이 클 것이다. 건칠기의 정식 이름은 협저칠기(夾紵漆器)로 고려말~조선초 건칠불상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건칠은 백골을 삼베로 만든다. 삼베를 두르고 칠을 바르고 이 과정을 반복해 켜켜히 쌓아 기물을 완성한다. 그 위에 칠과 칠죽이 올라가는 과정은 다른 칠기들과 같다. 목기와는 사뭇 다른 무게감과 얇은 기벽, 기벽면에 보이는 두툼한 칠의 질감과 촉감이 매력적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강창규의 <올록볼록>(1970년대)은 조선미전에 출품된 강창규의 초기 작품인 <건칠이십사각화병>(1934), <건칠십육각화병>(1936)의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강창규는 작품을 통해 단순함과 조형의 균형을 바탕으로 건칠이 가진 질감과 옻칠이 가진 색의 개성을 드러내려했다. 강창규의 이러한 작품세계는 그의 만년까지 고스란히 이어졌고, <올록볼록>도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강창규 <올록볼록> 입지름 18cm 높이 35cm, <건칠십육각화병>


강창규의 작업은 그의 제자인 정창호(鄭昌鎬:1948~2011)에게 계승되었다. 정창호는 더 나아가 건칠을 바탕으로 좀 더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건칠 끊음질 과기-동해>(2011)도 그 중 하나이다. 매끈하게 만들어진 건칠과기의 뚜껑을 끊음질로 얇게 자른 직선의 자개를 부착해 장식했다. 빈틈없이 방사방향으로 붙인 뚜껑의 직선장식은 오색찬연한 자개의 빛이 강렬한 붉은칠과 만나 화려함이 배가되었다. 



정창호 <건칠 끊음질 과기-동해> 뚜껑부분


이와 함께 정해조의 작품은 그의 말처럼 ‘재료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색과 형태로 건칠의 매력인 색과 질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칠화병-흑광율0830)(2008), <건칠화병-적광율 0822>(2008)은 강창규의 작품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정해조 <건칠화병 적광율 0822>


과거에 비해 칠기의 대중적 접근성이 축소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작업공정과 기법은 철저히 고수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확장되어,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시대부터 끊임없는 변화를 거치며 이어 온 칠기의 저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유행하는 그 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요와 미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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