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추사정화秋史精華- 간송미술관 제87회 정기전시회
전시장소 : 서울 간송미술관
전시기간 : 2014.10.12-10.26
사람의 마음에는 묘한 데가 있다. 삐까 번쩍한 신관으로 안내받기 보다는 칠 벗겨진 낡은 탁자에 엉덩이가 부딪치는 구관에 앉아있어야 무언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간송의 올드팬들도 모르긴 해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직성수구(直聲秀句)> 각 122.1x28.0cm 1822년 37살
그런 간송이 컴백했다. 사단법인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발족되고 동대문의 신장개업한 DDP에 ‘간송문화 특별전’을 선보이면서 성북동 간송미술관 정기전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던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낭보이다.
<허천소초발(許川小艸跋)> 19.0x23.8cm 1823년 38살
옛집 보화각에서 다시 개최한 전시는 DDP 전시와 선을 그어 과거와 같은 연구성과 중심의 전시될 예정이라고. 전시 공간도 확대 이전의 1층만 사용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테마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도 여겨지는, 정기전 창설 직후에 선보인 추사 정화전이다.
<명선(茗禪)> 115.2x57.8cm 50대
추사는 겸재와 함께 간송미술관이 온힘을 기울여 한국 미술의 중심축으로 세워온 대서화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왕조 500년 이래 절대로 다시없고 있다고 해도 그저 한둘 있을까 말까한 영재'(후지쓰카 지카시 표현)가 청조의 대석학과 만나 추사체라는 불후의 업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각 시대별 작품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고사소요(高士逍遙)> 24.9x29.7cm(<서원교필결후> 서첩에 함께 붙어있는 그림) 1844년 무렵58세
추사의 글씨는 연경에 가기 전과 갔다온 이후로 달라졌다고 하는 게 보통이다. 1810년1월26일 옹방강과 만남을 통해 남첩북비(南帖北碑)의 세계에 개안하면서 그는 이후 시간과 함께 추사체 완성의 길에 들어선다.
<설암게(雪嵒偈)> 46.0x53.3cm 1846년 61세
첫 시작은 1822년 봄 38살의 나이에 쓴 행서대련 <직성수구(直聲秀句)>이다. 여기서는 옹방강의 원만한 행서체에 옛 비에 보이는 고예서(古隸書)의 필의가 추가되면서 새로운 방향 모색이 시작되는 조짐을 보여진다.
<계첩고(禊帖攷)> 27.0x33.9cm, 1849년 가을 64세
이후 글씨는 대자서, 소자서 그리고 그림 속 글귀까지를 포함해 소개되는데 38살 때의 <허천소초발(許川小艸跋)>, 40살의 <난설기유십육도시(蘭雪紀遊十六圖詩)>를 거쳐 50대의 대표작 <명선(茗禪)>으로 이어진다.
<삼심만매(三十萬梅)> 23.4x132.0cm 1853년 68세무렵
이어서 1846년 제주 유배시절 환갑을 맞아 쓴 것으로 여겨지는 <설암게(雪嵒偈)>, 유배이후 한양에 돌아와 1849년 10월 친구 권돈인의 별장인 옥적산방에서 쓴 63세 書인 <계첩고(禊帖攷)> 가 있다.
<사십노각(四十鱸閣)> 30.0x122.4cm 1855년 70세무렵
두 번째로 북청 유배를 마치고 쓴 것으로 여겨지는 <사야(史野)>가 있으며 68세 무렵(1853년)에 쓴 것으로 여겨지는 <삼심만매수하실(三十萬梅樹下室)>이 이어지며 그 두해 뒤엔 1855년 70살에 쓴 것으로 보이는 <사십노각(四十鱸閣)>이 있다.
<대팽고회(大烹高會)> 129.5x31.9cm 1856년 8월 71세
대미를 장식하는 글씨는 1856년10월10일 서거하던 해 여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절필작인 <대팽고회(大烹高會)>이다. 간송을 아끼고 추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추사체가 일목요연하게 연대별로 완성, 성숙돼가는 모습을 소개한 이번 전시는 정말 놓칠 수 없는 전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