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
장 소 : 삼성미술관 리움
기 간 : 2014년 8월 19일 ~ 12월 21일
서도호의 작업과 <화성능행도>. 쟈코메티의 조각과 불상.
어울리는 듯 낯선 조합이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관10주년기념 특별전이 제시하는 ‘교감’의 방식이다. 자칫 잘못하면 어설픈 비교가 될 위험을 감수하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나 감성을 뽑아내려 노력한 것은 일단 의미있는 시도로 보인다. 게다가 한 작품 한 작품 어디에 내 놓아도 제일이라 할 만한 빼어난 작품들을 그 커다란 미술관 전체에 펼쳐놓았으니 눈 호강을 마다할 수는 없다.
청자진사연화문 표형주자 고려 13세기 국보 133호
청화백자 매죽문 호 조선 15세기 국보 219호
고미술 상설전시관인 MUSEUM 1에서는 시간을 넘어서는 “시대교감”을 주제로 한다. 4층에서부터 아름다운 우리 도자 작품들이 훌륭한 조명과 디스플레이의 도움으로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바이런 김의 회화 작품인 <고려청자 유약>이 걸린 벽 앞에 멈춰선다. 12세기 청자의 비색을 섬세하게 추상회화에 살려내는 시도를 하면서 고려시대 도공과 같은 마음이 되었을까. 작가는 이 그림들을 ‘색의 촉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그 심오함을 끌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색감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적어도 한국인들은 느낄 것이다.
리움 설치전경 2014 @삼성미술관 리움
달항아리와 이수경의 작품 <달의 이면>이 나란히 보이도록 배치했다.
다소 일차원적일수도 있지만 이러한 비교 혹은 대조가 전시장 내내 이어져 흥미롭다.
한 층 내려와 고서화가 있는 3층에서 서도호의 작품 <우리 나라>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한반도 지형을 등고에 맞게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그 한반도를 구성하는 것은 1cm 남짓한 작은 청동 인간모형이다. <화성능행도> 중 하나인 <환어행렬도>는 정조가 화성 일정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장면인데 그 행렬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도록 하여 우연히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내고, 행렬하는 왕의 행차 인원 외에 엎드려 있거나 구경하는 수많은 민초들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이들이 역사를 만들어내고 이 나라를 이어가는 이름없는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것일까. 그 부분이 서도호의 작품과 시각적으로도 의미로도 교감되는 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전시의 의도일 터이다.
정선 <금강전도> 조선 1734년 국보 217호
김홍도 <군선도> 일부 조선 1776년 국보 139호
서도호 <우리 나라> 2014
김득신 外 <환어행렬도> 1795년 경
<지장도>(14세기)와 쟈코메티의 <디에고 좌상>(1964-65)
현대미술 상설전 MUSEUM 2의 모습은 이번 특별전을 통해 많이 새롭게 바뀐 듯하다. 인간의 예술 행위에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감성을 국가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재구성한 것이다. 우연한 것인지 흐름에 따른 것인지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섬세하게 따졌다기보다는 공간을 관통하는 보편성을 찾는 데에 더 주력한 모습이다.
금동신발 신라 5~6세기
서세옥 <군무 1> 1988
이중섭 <황소> 1953-54
20세기가 되면서 인간의 자기표현 방식으로서의 미술이라는 인식으로 다양한 방식의 표현이 제한없이 펼쳐졌고, 시각적인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다는 제작 과정이나 개념 등 자체가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김환기, 서세옥, 이중섭, 박수근 등 우리 화가들이 우리의 정서와 환경에서 표현하던 전후 미술을 보여주고, 유럽의 앵포르멜, 고르키나 드쿠닝, 클리포드 스틸과 싸이 톰블리에 이르기까지 서양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2차원 평면에 펼치고자 했던 표현주의적인 추상들을 언급한다. 이후 이에 공감하고 변화해 가는 한국 현대 화단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순한 모방이라고 볼 수 없지 않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마크 로스코 <무제(붉은 바탕 위의 검정과 오렌지 색)> 1962
요셉 보이스 <곤경의 일부> 1985
앤디 워홀 <꽃> 1965
게르하르트 리히터 <925-4 줄무늬> 2012
기획전시가 주로 이루어지는 MUSEUM 3에서는 관객 교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설치미술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진입로의 19미터에 달하는 비스듬한 내리막 전체를 머리카락으로 수놓은 카펫으로 뒤덮은 작품, 모리스 루이스의 작품들을 차용하여 그것을 자수 노동자의 노동으로 바꾼 함경아의 작품, 브라질 현대미술 작가 네토의 추상적이며 생태적인 작품들을 관객이 직접 경험하고 통과하며 촉각적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세경 <카펫 위의 머리카락> 2014
함경아 작품 설치 전경
에르네스토 네토 <심비오인테스튜브타임-향기는 향꽃의 자궁집에서 피어난다> 2010 일부
재닛 카디프& 조지 뷰어스 밀러 f# 단조 실험 2013
올라퍼 엘리아슨 <중력의 계단> 2014
최정화 <연금술> 2014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멀티미디어 설치인 카디프&밀러의 작품과 아이웨이웨이의 거대한 인공적인 <나무>, 이동중 계단에서 발견하는 엘리아슨의 현상학적인 설치와 최정화의 가짜의 미학 <연금술> 등, 현대 미술이 자극하는 복잡한 심상을 관객은 나름대로의 감상 방법으로 이어갈 것이다. 복잡하게 교감의 증거들을 찾아내지 않고서도 전시는 충분히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 데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