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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광주비엔날레’를 꼬실러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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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광주비엔날레-‘터전을 불태워라’

2014년 9월 6일-12월7일 광주 비엔날레전시장
글: 정준모(미술비평, 前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시장 전경 

애증과 조바심

지난 3일 광주비엔날레를 다시 찾았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과 전문위원 그리고 대변인을 맡아 비엔날레 창설에 일조했다는 원죄(?)로 광주를 찾을 때마다 ‘이번 비엔날레는 좀 더 나아야 할 텐데’라는 조바심에 마음을 졸인다. 특별히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 현대미술이고 보면 이것도 공연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곤 짬을 내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시기에 열리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와 평가를 살펴본다. 브라질의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110억 원을 투입해 국가별 참여를 없애고 예술감독 찰스 에셔(Charles Esche, 1962~ )가 전체를 총괄하면서 대대적으로 새롭게 변신을 했다고 전한다. 그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후 한루와 성완경 등과 함께 공동예술 감독으로 일한 바 있다. 


아무튼 1995년 그해는 길고도 짧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평생을 두고 이야기를 해도 모자를 만큼 많은 일들을 해 치웠고 해내야했다. 그리고 1995년 9월 개막을 시작으로 11월에 비엔날레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관람객 165만명에 25억원 이상의 흑자를 내며 ‘성공적인 비엔날레’라는 평가(?)와 함께 시간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이런 추억 또는 기억 때문에 광주 비엔날레는 애증이 함께하는 장소이자 행사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광주비엔날레는 그렇게 고고의 성을 울렸고 오늘에 이르러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한국의 미술과 광주라는 지역을 세계 속에 당당하게 편입시킨 공을 세우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멋대로 읽기 또는 보기


1회 비엔날레 개막을 6개월 앞두고 우여곡절 끝에 착공했던 비엔날레 건물의 외벽에 제러미 델러(Jeremy Deller, 1966~ )의 거대한 초록문어가 벽을 뚫고 나오는 <무제, 2014>라는 제목의 트릭아트風 작품이 관객을 맞았다. 요즘 대한민국 도처에서 열리는 트릭아트에 관한 인기와 소문이 영국까지 전해진 것인지 예술감독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 1968~ )은 발 빠르게 이를 비엔날레 본 전시장 외벽에서 보여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예술감독 제시카 모건

현대미술은 각자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대로 오독(誤讀)의 즐거움을 즐기는 유일한 장르인 탓에 관객의 한 사람으로 나도 내 멋대로의 해석을 즐겼다. 초록문어를 보며 1980년 자신의 권력을 위해 광주시민들을 사지로 내 몬 ‘어떤 이’가 떠올랐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를 떠 올리며 엷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시 한 번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교환할 것이다. 



제러미 델러 <무제, 2014>

그러다보니 ‘표현의 자유’와 ‘안 볼 권리’의 문제가 프레 비엔날레에서 번질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인지 작가는 무릇 진정한 예술에서의 풍자와 해학은 ‘이런 것’이란 사실을 넌지시 귀 뜸해주는 듯했다.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문어의 모습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또 다시 그런 자가 나타날지 모르니 언제나 긴장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겼다. 이는 물론 작가나 예술 감독의 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그림보기가 틀린 것도 아니다. 


바로 현대미술의 묘미는 ‘내 맘대로 보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작가는 물론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못한다. 철저하게 자유인 것이다. 그 자유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대미술이, 비엔날레가 어렵다며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네 멋대로 보고 생각하라는 데 뭐가 어렵고 두려운 것일까. 


     

불, 주제가 아닌 소재 

 

아무튼 이번 주제는 ‘터전을 불태워라’(Burning Down the House)는 과거의 역사,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세우자는 제안으로 읽혔다. 작품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삶을 장악한 편견과 우상, 사이비, 허구, 신화, 인습, 편견, 고정관념, 권위, 금기, 상식, 남자, 여자, 진리, 사상을 불태울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많은 작품들이 다양하게 불태워야 할 것들을 적시하고 그것들이 왜 불태워 없어져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주변에 불태워 없어져야 할 것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을까 하는 사실에 새삼 섬뜩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런 불태워야 할  것도 불사조처럼 영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 울리모 그리토 그룹  

너무나 다양한 불태워야 할 것들로 가득 찬 전시장은 엘 울티모 그리토 그룹(El Ultimo Grito)의 불꽃과 연기의 이미지로 만든 벽지를 전시장 전면에 배경으로 배치함으로서 통일감을 주었다고 하지만, ‘불태워야 할 것’들이 우선순위 없이 너무 많이 나열된 탓에 정작 어느 것을, 또는 어떤 것을 불에 태워야 한다고 말하는 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태워야 할 모든 것을 수집해 놓아 발생할 전시장의 시각적 잡음을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그리토 그룹의 벽지를 일관되게 발라 이 소음을 다스리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것 같은 생각조차 들었다. 


사전적 의미의 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례가 망라된 불의 백과사전적 집대성은 인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불 태워야할 것 같은 강박증과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모은, 채집된 불태워 야 할 것들을 민족, 정치, 종교, 폭력, 페미니즘, 인권, 동성애 등등 소주제로 분류해서 전시하고 작품을 배치했다면 훨씬 더 명징하게 주제를 드러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스털링 루비 

게다가 너무 ‘불’이란 언어적 의미에 집착한 나머지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1972~ )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 <난로, 2014>를 전시장 입구에 배치하고 전시장 곳곳에 전시한 것은 글세 ‘불’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주제에 대한 예술 감독의 과잉설명 또는 친절로 받아들여졌다. 차라리 그의 굽는 동안 깨져버린 도자작품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루스 피셔

또 3전시실의 우르스 피셔(Urs Fischer, 1973~ )의 <38 E. 1st.>(2014)의 경우도 그의 단일작품으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기무사 부지(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09년에 열린 플랫폼 2009(Platform in KIMUSA)에 출품된바 있는 도모코 요네다(1965~ ), 조지 콘도(George Condo, 1957~ ), 스튜어트 우(Stewart Woo, 1985~ ) 등의 작품을 배치한 것은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내 피셔의 극사실적인 벽지 인테리어에 파묻혀 스스로 존재하는 독자적인 작품이 아니라 피셔의 작품의 일부로 전락하는 문제를 간과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조지 콘도  





카르스텐 횔러 <미닫이문> 

지금까지의 전시공학적인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 만약 1회 비엔날레에도 참여했던 카르스텐 횔러(Carsten Holler, 1961~ )의 <미닫이문(Sliding Doors)>(2003)을 전시장 첫 머리에 배치했거나 아니면 전시가 끝나는 동선의 마지막에 배치했다면 어떠했을까. 무언가 전시의 흐름을 잡아주고 정리해주거나 새로운 문제를 관객들에게 되돌려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도모코 요네다 <기무사> 

마치 다다이스트들이 사전에서 많은 좋은 단어들을 뜯어 흩뿌렸지만 정작 그것을 이어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단어는 좋았지만 문장이 완성되지 않은 듯 했다. 게다가 ‘어떤 물질을 태우게 되면 또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왜 태우는지, 태우는 목적이 무엇인지, 태워서 무엇을 얻고자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무조건 태우고 보자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불’은 주제가 아니라 소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궁극의 5.18


지난 어느 비엔날레에서도 보았던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보이는 광주 5.18에 대한 작품들은 그 이해의 수준이 그저 위키피디아 영문판 이상의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광주의 민중항쟁운동의 정신적, 민주적 가치가 성 정체성, 패권주의, 신체성, 전쟁, 종교, 죽음과 섹스, 미디어 정치, 사회적 갈등 등을 다룬 현대작품들과 같은 공간, 시간 속에 위치하여 광주 정신이 일반화되고 보편화되는 현장은 내게는 매우 불편했다. 물론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일 터이나 광주의 민주항쟁운동과 정신이 그것들과 같이, 동열에서 다루어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아난드 팟와르드한 <우리는 당신들의 원숭이가 아니다>

아난드 팟와르드한(Anand Patwardhan, 1950~ )의 비디오 작품 <우리는 당신들의 원숭이가 아니다>(1993)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비판한다. 스스로 지배자가 된 아리안족은 스스로를 변호하고 견고한 계급제도를 유지하기위해 하층민을 원숭이나 악마로 규정한 카스트제도의 모순을 지적한다. 



후마 물지

                               

후마 물지(Huma Mulji, 1970)는 파키스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정치적 문제로 인한 실종사건을, 귤순 카라무스타파(Gülsün Karamustfa, 1946~ )은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와 이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소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감옥에 들어온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여성들의 개인사를 추적한다. 브렌다 파하드로(Brenda Fajardo, 1940~ )는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필리핀인의 간단없는 저항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역사 속 저항운동의 하나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귤순 카라무스타파 <감옥 회화> 



브렌다 파하드로

          

그리고 종국에는 루마니아의 작가 미르체아 수키오(Mircea Suciu, 1978~ )가 50장의 다양한 크기의 흑백 드로잉과 사진을 사용한 <먼지에서 먼지로>(2014)를 통해 그들의 5. 18에 대한 인식의 대강이 결론지어진다.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 첫 해인 1914년 서부전선에서 연합군과 독일군 병사들 사이에서 맺어진 휴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4개월, 참혹한 참호전을 겪은 병사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12월 24~25일 사이에 사령부 명령을 어기고 ‘크리스마스 휴전’을 이룬다. 



미르체아 수키오 <먼지에서 먼지로>  

수키오는 ‘크리스마스 휴전’을 시작으로 2014년 우크라이나 폭동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 동안 일어났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을 사진을 바탕으로 한 흑백 드로잉으로 나열함으로서 광주, 5.18정신도 하나의 정치적 사건으로 보편적인 세계사 속의 하나의 저항이나 투쟁의 역사로 위치시킨다.  


어느 누구에게나 아픈 상처는 있게 마련이고, 어떤 나라고 힘들고 슬픈 역사가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의 5.18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부끄럽고,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렇게 세계사라는 맥락 속에서 여러 저항운동 중 하나로 다루어지는 것은 글쎄 어쩐지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20년 동안 10번의 비엔날레에도 불구하고 광주정신은 궁극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이런 저런 저항운동의 하나로 머물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광주정신의 궁극을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나게 될까.

   

불태우기와 불장난의 차이?


이렇게 여전히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전시를 돌아보면 수많은 넘어서야할 벽 같은, 세상의 불태워 없애할 것들을 목도하면서 태워버리면, 광주 사투리로 ‘꼬실러불먼’ 모든 것이 해결될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광주비엔날레 이용우 대표이사의 사임이 떠올랐다. 


사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포스트 이용우’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사실 이런저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늘 광주비엔날레가 지닌 국제적인 인지도는 그의 인적네트워크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를 ‘비엔날레의 타짜’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승부수를 광주비엔날레의 세계화, 국제화에서 걸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사임하고 나면? 이라는 질문은 답은 갖고 불사르려고 하는 것인가와 같은 말이다. 산불피해지의 자연복원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광주는 ‘포스트 이용우’에 대한 대안을 먼저 마련하고 불을 질러도 질러야 할 것이다. 


사실 대표이사라는 직책이 경영을 우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비엔날레의 총괄감독 역할을 하느라 경영부문을 놓쳐버린 대표이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투톱체제의 공동대표제도나, 현재 순수민간 법인의 형태를 광주시와 기타 민간이 출자한 주식회사 또는 유한회사로 운영주체를 전환하여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지는 대안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언제 제대로 된 이런 논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주비엔날레를 광주의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 지역인사들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비엔날레’가 아니라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즉 대한민국의 비엔날레라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성년에 이르면서 나름대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술행사로, 광주라는 도시를 현대미술의 중심도시로, 그리고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지정되는데도 일정부분 기여했다. 이러한 주체로서의 광주비엔날레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간 약900억원이라는 대한민국의 국부가 투입된 결과이다. 


제 1회 비엔날레 당시 스스로 지속가능 한 비엔날레를 만들기 위해 150억 원의 기금을 모아 재단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면서 지금까지 재단기금과 국고보조금으로 행사가 이루어졌다. 평균 연 45억 원의 비용이, 2년마다 개최하니 매회 90억이 투입된 것이다. 그리고 광주시가 시비를 보태기 시작한 것은 국고보조금이 줄어들기 시작한 2012년, 즉 지난 9회때부터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지금까지 평균 45억 정도의 국고가 매년 지원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술행사라는 것이다. 10회라면 적어도 줄어든 올해 국고 20억을 기준으로 한다 해도 200억을, 여타 지방과 미술계가 광주에게 양보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껏 그나마 키워 논 광주비엔날레를 엉뚱하게 제 욕심만 차리려는 지역인사는 없어야 한다. 비행기를 타보기는 했지만 조종은 할 줄 모르는 인사가 비행기 타봤다는 경험만으로 수백명 승객의 목숨이 달린 조종간을 잡을 수는 없다. 따라서 후임 대표인사 인사권을 가진 광주시장은 광주시민의 의견을 구할 것이 아니라 후임 인선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해충방제를 위해 논두렁을 태우려다가 산불로 번져 감당 못 할 피해를 입는 것처럼 새롭게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불태우자고 시작한 제 10회 비엔날레가 광주비엔날레를 불태우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꼬실르는 것은 쉽지만 불태운 이후의 대책이 없다면 이는 정말 ‘불장난’에 불과하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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