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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의 자연, 그 영원한 이중성에 대하여 <코리안 뷰티: 두개의 자연> 소장품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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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정(미술사가, 미술평론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4. 5. 17-9.2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작품만으로 전시를 꾸렸다. <자이트 가이스트>전이 열린 전시실에서. <코리안 뷰티>라는 전시명은 많은 상상을 동원케 하였는데 솔직히 국립미술관의 국가주의가 먼저 생각났음을 고백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하였을 터이니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닐 터이긴 하다. “어떻게 한국의 미를 규정하려고?” 하는 우려도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음도 부정하지 않겠다. 그래서 역사는 무서운 거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단어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니 샘 멘데스 감독의 1999년작 영화 사진들이 나왔다. ‘코리안 뷰티’의 경우 한국의 성형·화장·미인 사진들이 보였다. 한 편의 영화가 그러했듯 한국 현대미술이 ‘코리안 뷰티’의 대표 이미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구글검색에서 ‘코리안 뷰티’를 치니 2014년 6월 17일 현재 네 번째에 전시에 관련된 사이트가 뜨고, 이미지 검색에서는 <뉴시스>에 게재된 전시 사진이 첫 번째로 뜬다. 기획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구글검색 첫 화면에 나오는 전체 이미지 404개 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코리안 뷰티>를 다룬 사진은 서도호의 <집 속의 집> 2건을 포함하여 50개였다. 생각보다 사진이 적고, 사이트의 내용도 적은 것은 아마도 전시장 내 사진촬영을 금해서 블러그나 카페에 전시에 대한 내용이 실리기 어려운 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배우, 그리고 화장품 사진이 아닌 한국의 미술작품이 드러난다는 것은 미술계로서는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영어로 검색하면 별 다를 것도 없어진다. 첫 사진은 영화배우 송혜교 얼굴이고 이후 수영복 차림의 여성들이 그득할 뿐 ‘아름다운 한국의’ 미술작품은 발견하기 어렵다. 현대인이 정보를 대하는 방식에 착안하여 전시의 명칭을 찾아낸 점은 흥미로웠지만 결국 인프라로서 한국현대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소개되어야 할까에 대한 방안이 보다 더 큰 틀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출빈도와 저작권의 관계, 세계를 향해 우리 미술과  전시를 알린다는 것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홍보해야 하는 지점에 있는 것이다.     

  전시는 ‘두 개의 자연’이라는 부제에 따라 <자연 하나:울림>, <자연 둘:어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이해하자면 자연에서 길어올린 영감과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주제로 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친절하게 평면도와 작품을 설치한 순서까지 기재된 안내문이 전시관람의 편의를 돕는다.


송현숙 <2획> 1997


  2층의 <자연 하나:어울림>은 이강소의 붓질 <허>에서 시작한다. 동양적 사고를 보여주는 여백과 서체추상의 조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준다. 역시 한국화의 먹과 빛 그리고 움직임을 유비적으로 보여주는 오수환의 <적막> 시리즈, 푸른색 점묘가 바람에 일렁이는 숲의 나무처럼 반짝이는 유병훈의 화판 틈새를 지나 김호득과 이우환의 화면과 송현숙의 붓질을 지난다. 그리고 구본창의 달을 닮아가는 백자를 바라보며 “수 백 년 전의 각종 불상과 탑파, 도자 공예, 한옥 등 전통예술의 개념에 머물러” 있음을 통탄하며 ‘한국현대미술의 예술적 창조성과 고유한 미적 감수성의 단편을 조망하는’ 데 전시를 기획한 의의가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자와 먹 그리고 여백으로 인지되는 한국적 미의 관념을 대면한다. 비우는 것은 가득 참의 경계임을, 그것이 한국의 미임을 오히려 이들은 보여준다. 이 오래된 정서는 사실 퉁쇠를 갈아 인간을 만들어내는 물질을 다루는 김종구의 조각에서도, 최병훈의 돌을 통한 사유를 유도하는 장소적 작품에서도 유지된다. 우주 만물의 존재 방식과 그 근원에 대한 탐구 작업들을 모두 포함함으로써 자연의 생성원리에 대한 작가들의 사유 세계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우환 <동풍 84011002> 1984

 


유병훈 <숲-바람-86 II> 1986


  아마도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층에서 2층에 이르는 전시장 큰벽이라 할 수 있겠다. 2개층을 관통하는 구석의 큰벽과 바닥에 35점의 작품이 하늘, 나무, 물, 땅 등을 보여준다. 커다란 벽에 마치 구성을 하듯 벽면 여기저기에 시각적 무게를 가늠하여 배치한 작품들은 컬렉션을 선택한 눈과 그 눈에 의미를 주어 더 많은 것을 부여하게 하는 디자인의 힘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다만 하늘에 눈을 두어 걸음을 옮기다가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가드레일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나마 유연한 줄이어서 소음도, 상처도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전시장에서 미로게임의 평면을 만날 줄은 몰랐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층의 구석에 적혀 있는 김춘수의 <꽃>은 전시를 설명하는 키워드일까. 엄마와 아빠가 딸과 아들에게 혹시 자신의 꿈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 옆에 붙은 글씨가 혹시 이 전시장을 설명하는 단서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를 읊조리며 벽면을 둘러본다. 캔버스에 도자기토를 발라 그것을 이리저리 긁고 아크릴을 사용하여 자연의 풍경을 재현하는 차규선과 대자연 앞에 한없이 고독하고 작은 인간을 보여주는 디아스포라 미술인 노은님의 작품과 신현중의 뿔있는 동물의 당당한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조우 혹은 환경 등 복잡다단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최기석의 <철의 숲>을 중심으로 자연에 대한 단상과 자연을 벗어난 도시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최호철, 이종빈, 구본준, 정연두의 작품들은 욕망으로서의 자연과 또따른 욕망의 실현처, 하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세계를 극명히 대비시켜 보여준다. 이 사회적이며 명쾌한 장면들은 또한 ‘코리안 뷰티’가 길을 잃은 지점이기도 하다. 김상우의 극사실 인물화인 <세대>로 마무리되는 서사구조는 자연과 인간 혹은 상념으로서의 미적 지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정작 길을 잃고 만다. 하지만 원초적인 ‘자연’에 대한 상념들을 풀어내는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자연, 이제는 도시도 하나의 자연이 되고 말았음을 인정하고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현대인의 삶인 것임을.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미’를 생각할 때면 여전히 먹과 붓과 도자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한다.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2000


김상우 <세대> 2003


  뜬금없는 추억의 향수로 존재하는 얼마 안된 시간의 사건과 삶의 방식들, 자연 그자체로 증기를 뿜어내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 보이는 온갖 구름들은 문득 유년기로 인도한다. 자품 하나하나는 홍차에 찍어먹는 마들렌의 냄새로부터 환기된 과거를 보여주는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시대 생산한 작품들은 ‘우리’ 시대의 기록임을 보여준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이 공간이 고맙다. 가보지도 못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유명하다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곳곳에 그득한 서울 하늘 아래서 마치 어느 날 10대 때의 ‘무도회의 수첩’을 발견한 중년처럼 지나간 삶의 흔적과 사람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감사이다. 


글 조은정(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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