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chen, 20세기 부엌과 디자인> 금호미술관, 3월 20일-6월 29일
<Mom and Morning> 2014 서울리빙디자인페어, 3월 26일-3월 30일
가장 소거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은 아마도 식욕이 아닐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각자의 생활습관을 기반으로 하기에 보편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유일하게 생산행위를 하는 공간인 부엌에 대한 연상이 단지 음식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근대화의 20세기를 거쳐 21세기의 절정을 향하는 지금, ‘부엌’이라는 단어는 한국인에게 취사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 너머의 어느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부엌, 시스템화하다
금호미술관의 <kitchen, 20세기 부엌과 디자인>은 미술관에서 ‘부엌이 전시된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작품이 걸리거나 놓여지는 그 공간에 부엌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 즉 공간이 될 것인가 오브제가 될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중심에 있다. 전시는 1920년대 이후 현대까지의 부엌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그 시대에 따른 부엌의 특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1부는 1920, 1930년대의 ‘가구에서 작업장으로’라는 명제 아래 장(欌)을 만들어 집기를 넣어두는 방식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의 부엌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부엌’이란 오늘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는 이른바 지그재그식 주택들이 지어지던 시대, 제1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 새로운 도시 건설을 꿈꾼 에른스트 마이가 주창한 ‘새로운 프랑크푸르트’라는 위생적인 주거단지 건설의 산물이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상품에서 독일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특성일지도 모를 경제적이고 튼튼하고 위생적이며 합리적이며 단순한 미를 포함한 것이 이때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가 그곳에는 담겨있다.
프랑크푸르트 부엌 안내도
‘어떻게 하면 집을 지을 때부터 주부와 증가하고 있는 일하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을까’라는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의 생각은 공사과정의 합리화, 건축부품의 규격화와 함께 실현되었다. 공간에 놓여지던 부엌가구는 붙박이로 설치되었고 6.5평방미터의 공간에서 효율적인 가사노동이 가능하도록 배열되었다. 주택의 표준적 형태는 부엌의 표준설비도 가능하게 하여 채광이 용이하도록 사선으로 배열된 주택의 내부에는 같은 형태의 부엌들이 나란히 자리하게 된 것이다.
실견한 1926년 고안되기 시작하여 1927년에 설비된 바로 그 프랑크푸르트부엌은 한마디로 ‘예쁘다’. 과학의 이름으로 계산된 동선은 이전에 비해 협소한 부엌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집약된 노동공간으로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 앙증맞은 공간에 매혹의 눈길을 보내지만 아마도 새로운 부엌을 맞은 이들은 집안에서 끓는 수프냄새와 요리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시간이 추억이 되어버린 현실을 한탄하였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합리적이어서 공간을 최소화한 만큼 격리된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마도 새로운 독일 건설을 꿈꾸던 그 냉혹한 시대에 군소리는 없었을 것이다. 건강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웃음을 지으며 건강하게 하지만 매우 여성적인 모습으로 노동하는 여성들이 요구되던 때였으니 말이다.
더불어 함께 전시된 바우하우스의 제품들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일상용품의 기계적 모습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효율과 위생에 이어 심미적 기능이 더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장식에서 벗어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미는 ‘진정한 모던’의 미감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실용도 예술이 하면 다름을 보여주는, 여전히 유효한 바우하우스의 개념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Marianne Brandt, Napkin Holder, Ruppelwerk Sheet Metal, c.1930
진화하는 부엌
19세기 말, 상징주의가 꽃피고 아르누보가 한창일 때, 포겐폴은 부엌용 장식장을 만들었다. 목재로 만든 장에 흰색을 칠하여 마감한 장들은 인기를 끌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장이지만 흰색의 외관은 무엇을 선택하여 넣든지 일체감을 느끼게 하므로 일종의 시스템과 같은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경첩을 눈에 안보이게 하고 청소가 용이하도록 고안한 둥근 모서리 등의 특징은 미국의 부엌가구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포겐폴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흰색의 현대적 마감과 찬장의 이음새가 꼭 들어맞는 모듈화된 구조 등을 이루었다. 프랑크푸르트부엌이 보여주는 완벽한 갤러리형을, 이미 포겐폴은 예시하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1930년대 신건축 스타일 뷔페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변화한 사회를 읽어낸 회사 포겐폴은 경쾌한 현대생활을 반영하는 부엌을 개발해냈다. 프랑크푸르트부엌의 전체가 조립된 상태로 만들었던 것에서 벗어나 가구를 단위화 하여 공간에 맞게 배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전후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건설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간에 맞추어 부엌은 다시 가구화하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60센티미터 단위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구성해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이기도 했다. 1930년부터 1950년 사이, 나찌에 맞서 미국에서는 의도적으로 채택되지 않던 독일식 부엌이나 제품들이 전후 새로운 부엌의 모습을 탄생시킨 포겐폴에 의해 그 고립의 상황을 벗어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포겐폴의 독일식 부엌과 주방기구에 관심을 가지지 시작하였고, 포겐폴의 유닛형태는 다시금 세계적인 양상으로 채택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독일 뷔페
한편 전재복구 기간으로 볼 수 있는 1946년에서 1952년 동안 르꼬르뷔지에는 마르세이유에 주택단지를 지었다. 위니테 다비타시옹은 23개의 다른 주거유형으로 구성되었고 생활을 운영하는 주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샤를로트 페리앙과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위니테 다비타시옹 부엌은 철저히 개인의 공간이 보호되는 개념 아래 제작된 것이다. 부엌에서 다이닝룸으로 문만 열면 음식을 내갈 수 있는 구조는 시중드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가족의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던건축이 지닌 엄밀하고 정갈한 아름다움, 색채의 조합과 사각의 명확성 등 르꼬르뷔지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세부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르꼬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시대를 대변하는 개념의 집약체는 바로 부엌인 것이다.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자본과 군사력에 의해 2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아방가르드의 전통이 이동된 것처럼 부엌의 트렌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룩키친이라 명명된 부엌을 개발한 레이먼드 로위는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에서 활동을 재개한 경우였다. 모서리는 둥글리고 이음새는 드러나지 않게 한 유선형의 형태들은 전쟁 중 중요해진 과학의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게 하며 동시에 기능과 맞먹는 위치에 미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인간공학과 부엌’이라는 두 번째 주제는 그렇게 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정리되고 있다.
3부 1960s-1970s ‘인본주의와 부엌’ 섹션에서는 1960년대 “인간공학을 집대성하여 사용자 중심의 작업공간으로 구체화”한 점을 특징으로 잡고 있다. 역사상 1960년대는 가장 이글대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여자가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셔츠를 입어 소매를 걷어올려 입은 시대에 정치를 비판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는 젊은이들의 힘이 넘쳐나는 공간. 1960년대의 인본주의는 사회적으로 히피운동, 학생운동 등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인간해방운동을 기반으로 한 것일 게다. 전시에서는 동선을 최소화하고 조리순서를 배열하고 이른바 ‘디자인된’ 부엌을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활발히 적용되어 타파웨어가 만들어졌고, 코닝웨어 등 식기류도 위생적이며 단단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내열성이 강한 재료들로 구성되는 것처럼 신소재인 플라스틱을 채용하여 위생적인 부엌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1980s-1990s ‘전문가의 작업공간으로서의 부엌 섹션’은 전문요리사들의 공간을 닮아가는 부엌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테인리스스틸의 사용으로 모듈화함으로써 마치 병원의 수술실과도 같아진 부엌의 모습은 위생개념을 극대화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부엌 중 하나라는 불탑시스템을 그러한 요소를 갖춘 부엌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최고로 집적한 모듈의 부엌이란 점에서 재료와 기능의 단순함이 미래의 부엌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된 부엌 중 1998년의 불탑시스템은 바퀴를 단 이동형 장 혹은 조리기구를 보여줌으로써 다양하게 조립할 수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동선과 노동을 최소화하는 움직이는 가구로서의 부엌을 보여주고 있다. 시스템에서 다시 가구로, 그렇게 부엌은 변화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불탑 시스템 1998
전시된 부엌은 1층의 ‘한샘마루’에서 장정을 마친다. 키친바흐라는 고급라인으로 미술관 곳곳에 전시된 ‘콤팩트’를 기본으로 한 서양의 시스템 부엌과는 다르게 넓은 공간에서 귀족적 면모를 자랑한다. 아무런 도구가 놓이지 않은 한샘마루의 그 여유로움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휑하기까지 하다. 넓고 멋진 부엌 가구(?)를 보며 집에 저런 부엌을 만들려면 얼마나 큰 집에 살아야 할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전시를 관람한 많은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듯하다. “아, 저런 부엌을 가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집에 살아야 할까요?”라는 장난기어린 질문에 동행한 건축과 교수 한 분이 말씀하신다. “집안의 중심에 부엌을 놓으면 되지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아주 오래 전 부엌은 집의 중심에 있었다. 지금도 페루의 제법 넉넉한 삶을 사는 농가조차도 중심에 화덕과 부엌살림이 있고 사람들은 벽에 붙인 침대에서 잔다. 그 옆에는 옥수수가 주렁주렁 걸려있고 양식이 되는 기니피그가 바닥에 오밀조밀 놀고 있다.
추억의 회상장치
부엌의 진화, 그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부엌에 대한 생각의 흐름에 다름 아닌 성 싶다. 전시된 한샘 키친바흐의 특징은 부엌에 아일랜드식탁과 전통 마루를 종합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드러낸 마루는 한국의 전통을 끌어들여 현대 부엌에 접목시킨 디자인 개념일 것이다. 아니면 디자이너의 추억을 담아 대청마루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을 먹던 옛 정서를 가시화한 것일 게다. 그 눈물겨운 근대의 추억은 현대 부엌을 보러 온 이들에게는 ‘생뚱맞아’ 보인다는 평도 제법 있다. 그것은 어쩌면 콤팩트하고 기능적인 부엌의 기능과 인간노동에 근거한 개념에 감탄하다가 만나게 된, 거대 자본으로 해결한 넓다 못해 널널한 부엌의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인 길고 네모난 부엌의 실체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른다.
유년의 기억, 부엌에 대한 추억을 장치화한 장소를 리빙아트페어의 한복판에서 만났었다. 전시된 위치상 리빙아트페어 회심의 작품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리빙아트페어가 한창인 코엑스는 늘 그렇듯 분주한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그 한귀퉁이에 마치 게르처럼 천막 하나가 정착해 있다. 하얀 색의 텐트라고 생각되었지만 여러모로 살펴보면 가장 단순한 집모양의 구조물이다. 한 면에만 입구를 두어 문으로 들어가듯 집에 들어가게 하였다. 상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사방에서 접근이 용이하게 한 여타의 공간과 차별되는 점이다. 멀찍이서는 파악할 수 없고 직접 들어가야만 경험할 수 있게 한 그 공간은 온전히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자만 부뚜막과 축약된 시렁 혹은 선반이라 할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행복부스 (* 사진출처: 디자인하우스. 진행: 이지현 수석기자, 촬영: 이경옥 사진기자)
외벽에는 손거울, 전선줄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장바구니, 접시, 도시락, 찬합, 수저 등이 ‘프린트되어’ 있어 조금은 지나간 시간인 적어도 70년대 이전의 여성, 부엌 도구들의 모습을 통해 ‘기억의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문을 들어선 전면에는 부뚜막이 설치되어 있다. 단차가 있는 입체적 형태의 패널에 시멘트를 발라 마감한 부뚜막은 아궁이와 굴뚝 등이 재현되어 있고, 부뚜막 위에는 종이로 만든 등들이 달려 있다. 종이에 오래된 신문의 광고 부분을 프린트해 접고 그 안에 콩나물 형태를 종이로 만들어 넣은 등은 종이봉지에 넣어 100원어치 콩나물 팔던 시간을 은유하는 것일 게다. 흰색 네모꼴은 ‘콩 두(豆)’자를 적어 두부임을 알린다. 하기야 네모난 게 부뚜막 위에 매달려 있으니 메주, 한약 심지어 벽돌 등 네모난 많은 것들을 대입해보게 되니 친절한 알림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두부모양의 하얀 등, 노랗지 않은 콩나물모양 등. 조명기구를 종이로 만들면서 형태만 두고 색을 소거함으로써 공간을 무채색으로 만든다. 그 색채 없음은 부뚜막 중앙의 영상을 더욱 강렬하게 보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행복부스 (* 사진출처: 디자인하우스. 진행: 이지현 수석기자, 촬영: 이경옥 사진기자)
명제가 <mom and morning>인 것처럼 전시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에 대한 추억 혹은 오마주가 주제이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머리 수건 질끈 동여매고 부엌에 들어가 밥하고, 찌개 끓이고 여러 가지 요리를 하여 한 상 가득 차려내는 엄마, 일찍 기척을 하시어 단장하시고 옷차림새를 갖추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출근하는 아빠, 학교 가는 언니, 오빠들 그 모두가 아침식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년기의 엄마와 주방에 대한 추억을 재현하듯 또각또각 도마소리, 지글지글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 전을 부치는 행위 등 요리하는 장면이 부뚜막 위에 펼쳐진다. 시각과 소리를 함께 한 영상은 공감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종이 위에 보여지는 요리 장면은 잡지의 화보처럼 명료하고 추억은 미장센화하였다. 나무패널에 시멘트로 마감된 ‘영화세트’ 같은 부뚜막을 보며, 만약 이른바 순수미술에 종사하는 작가라면 어떤 부엌을 보여주었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십중팔구, 그 혹은 그녀는 돌을 구하러 사방팔방 연락하고, 부뚜막에 불이 잘 들게 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 연세드신 할아버지를 찾아 시골마을을 뒤지고 다녔을 것이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의 엄마의 아침 공간은 부뚜막이라는 추억의 장소와 벽에 부착한 선반에 압력솥, 냄비 등 스테인리스스틸 조리용기를 설치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킨다. 현대에만 존재하는 금속인 스테인리스스틸은 스보다 굽타의 번쩍이는 용기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거대한 물신의 사회에서 부엌, 식생활은 추억과 인간 자체의 상징으로 위치한다.
부엌이란 공간은 아직은 분명 여성의 노동공간이자 가족의 생명유지를 책임지는 현장이다. 그 현장에 대해 감성적 접근은 유년의 추억, 영원한 모성의 상징에 대한 추구와 닿아 있는 듯 보인다. 서영희의 부뚜막과 한샘의 마루가 결합된 아일랜드부엌은 분명 추억의 장치를 가동시키고 있다.
부엌과 변기, 식욕과 배설 사이
금호미술관의 키친 전에는 부엌과 함께 부엌에서 사용되는 용기들이 전시되고 있다. 다양한 부엌의 용기들은 디자인화되고 시스템화되어감을 보여준다. 지하전시장의 진열된 용기들은 나란히 분류되고 정리되어 명제표와 함께 소개된다.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용기들은 심지어 감자칼조차도 상품에서 공예작품으로, 공업생산품에서 아트로 자리를 바꾼다. “포개어 쌓을 수 있고” ‘오븐에서 식탁으로 바로 이동이 가능하게 한 용기’ 들의 개발로 설명되던 부엌용품들은 욕망의 대상처럼 전시장에 넣어져 아크릴로 덮인 채 화려한 조명 아래 자신을 드러낸다. 박물관의 백자나 청자처럼 그렇게 부엌의 식기들은 먼 훗날 전시되고 연구될 것임을 암시한다.
부엌을 다룬 두 전시에는 물론 부엌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담겨 있다. 리빙아트페어에는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의 부엌 이외에도 여러 디자이너에 의한 부엌 혹은 식당이 보여졌다. 헌데 멋진 부엌 혹은 식당 사이에서 서영희만이 부엌이 지닌 고유한 속성인 ‘요리’ 혹은 조리를 담고 있음에 관심이 갔다. 사실 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조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 본질이 부엌을 다룬 어느 장소에도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빛나는 접시와 우아한 식탁이 자리한 곳에서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는 사람의 ‘정성’과 조리의 과학과 불의 사용을 다루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것은 작가들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애초에 노동의 공간으로서, 가족이라는 구성체를 중심에 둔 정신적 공간인 부엌이 전시장에 들어온 것이 문제일뿐.
수 년전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을 들렀는데 전시장 한가운데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벽 가까이까지 지어진 그 건물은 그저 전시장 안에 하나의 박스를 집어넣은 것 같아 보였다. 박스 모양, 하지만 분명 집이라고 생각한 그 박스에는 자그마한 유리창이 나있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유리창 안을 들여다 본 순간, 딱 눈이 마주쳤다. 열심히 조리대에서 요리를 하는 젊은 작가와. 물론 그 전시는 부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요리의 행위에 대해, 재료를 다듬고 지지고 볶는 과정을 예술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잘 갖추어진 부엌시스템이 있었다. 2014년 MoMA의 디자인 전시장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여성들의 디자인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식기에서부터 부엌,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은 여성의 사회적 인식과 지위 변화, 사회적 사건들을 통해 조명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함에 따라, 혹은 사회적 욕구에 따라 사회에 나서게 된 시기의 부엌과 찬모가 밥을 하던 시대의 부엌은 동일한 공간이 아니다. 디자인은 삶을 반영하고 삶은 사회에 있다. 그래서 삶을 보여주는 전시는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부엌, 가장 가정의 중심에 있어 은밀한 장소일 것 같은 그곳이 실은 사회의 전방인 것이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부엌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콜렉션하고 계획을 세운 이들의 부단한 노력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시장 안에 시스템이 아닌 부엌을 재현하는 것은 오브제로서의 미술을 보는 것과 같다. 뒤샹이 변기를 <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에 들여놓았을 때 화장실은 예술의 이름으로 전시장에 진입하였다고 치자. 여러 국가의 여러 미술관에서 부엌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순차로 치자면 먼저 미술관에 진입한 것은 화장실이고 부엌은 나중? 물론 아르누보 전시장에는 접시를 넣는 장이 설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명백히 부엌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욕망 체계로 치자면 배설이 취사에 앞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먹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배설에 이르면 문제가 다르기는 하다.
미술관에 설치된 부엌 시스템은 단순한 디자인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의 욕망을 드러내 성찰을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조금은 그 욕망의 결과에 불편하게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부엌설비가 엄청난 가격을 통해 집에 장착되는 예술의 위치에 이르러 있음을 목도함으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