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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의 소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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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전시명 : 명화를 만나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일정 : 2013. 10. 29-2014. 3. 30.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1916~1956이 월남 후 남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는 1950년에서 1956년 죽기 직전까지, 약 6년간이었다. 한국전쟁 중 처참한 피난 생활을 하면서 판잣집 골방에서 혹은 다방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대폿집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종이 등에 연필이나 못 등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가 남긴 그림들은 제한적으로 나마 그의 재능과 필력을 살피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 그는 타고난 화가이고 손이 빠르며, 탁월한 감각의 장식가이자 열정과 자유로움을 지닌 예술가였다.



이중섭, "흰 소", 유화, 기법종이에 유채, 30.5 x 41.3 cm


이중섭의 대표적인 그림은 단연 〈흰 소〉이다. 그의 소그림이 지금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것도 3점이 동시에 한자리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하루 종일 소를 관찰하다가 소 주인에게 고발당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는 소를 사랑하고 잘 그렸다.

한국인에게 소는 가장 소중한 동물이다. 생존에 있어서 불가피한 존재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놀려 힘써 일하고는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는 소에서 이중섭은 한국인과 한국인의 삶을 부단히 떠올렸던 것 같다. 아울러 그에게 소는 조선 민족과 잃어버린 나라, 고향 땅을 상징하는가 하면, 광복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에는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남성으로 대변되고, 나아가 고독한 자신의 초상이기도 했다. 그 소는 이인성의 〈해당화〉에 등장하는 소녀의 청순한 눈망울과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속 가난하지만 순박한 인물들과 겹친다. 활달한 필력, 예리한 선묘로 동양 문화의 미를 유감없이 재현한 그의 그림들에는, 그가 어린 시절 평양 근교에서 보았다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웅혼한 회화에서 연유하는 미적 특질들이 존재한다.

이중섭은 고구려 벽화, 특히 강인한 ‘선조線調’와 평면적인 화면이 특징인 고대 북방계통의 그림에서 회화의 본질을 터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선’이 중심이고, 색채는 부차적인 편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형상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이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공간 내부의 공기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거나, 선이 주가 되어 부드럽게 흐르다가 어느 순간 얽히고 굽이치며 빠지는 에너지로 응집된 화면은 그가 얼마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자취들이다. 더불어 그는 인간과 동식물이 어우러져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를 자신의 주제로 삼았다. 우주의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자연에 귀의하는 삶을 추구하는 도교적 이상향의 그림자 또한 그의 그림에 녹아 있다. 이 모든 특질이 그의 소 그림에서 절묘하게 성취되고 있다.

이중섭은 격렬한 소의 동세를 직접적인 선조, 힘찬 붓질을 통해 가시화했으며, 그 내부에 요약과 과장, 폭발하는 내면의 격정을 드러내는 표현주의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선 맛은 사물의 본질을 추려내는 동양화의 선조 그대로다. 그러니까 소를 그리는 게 아니라 소의 ‘골법’을 그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소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소를 보는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한 개인의 실존의 내음이 묻어난다. 개인성의 체취가 너무 아득하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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