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연 명 : Toward a Cosmopolitan Korean Dance / New York Multi-Cultural Performing Arts Festival
아티스트 : Hyuns Hong(media artist), Eddy Kim(cellist), Hunju Lee Dance Company & Laban Movers
일 시 : 2014년 1월 29일 오후 5시, 8시
장 소 : Brooklyn Academy of Music(BAM)
전통에서 K-pop까지.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독도와 비빔밥 이미지를 올려 국가 홍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서경덕 교수가 한미헤리티지재단이 후원한 한국어 교육 확산을 위한 뉴욕 순회공연의 표어이다. 대한민국의 문화가 어떻게 세계에 유통될 수 있는가를 말하는 전략으로 이해되는 의도적인 행사에 한국무용가, 미국의 무용가 이외에 미디어아티스트 홍현수와 첼리스트 에디 킴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Toward a Cosmopolitan Korean Dance”라는 무용 프로그램 아래에는 여러 장소에서의 강연과 공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서양문화의 특정 장소에서 동양의 전통과 예술을 표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현재를 위한 전략이다. 문화적 자긍심에서 발원하고 다소 특별해보이지만 민족적 전통을 내세우는 것은 다민족 사회에서 보편성을 띠어야 눈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공통의 언어는 물론 예술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홍현수는 한국무용팀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다른 장르 예술의 협업(Collaboration)은 이른바 융합(融合)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뉴저지 소재의 KCC(한인문화회관), 플러싱의 프라미스교회 그리고 브룩클린의 BAM(Brooklyn Academy of Music) 피셔(Fisher) 등에서 이루어진 행사는 무용이 중심에 있고 미디어아트는 협업 혹은 보조의 양상이었으나 BAM에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로서 존재를 드러내었다.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KCC에서는 전통적인 부채춤, 신무용 혹은 최승희 류라고 할 수 있을 장고춤 그리고 아주 전문적인 무용수들인 인천시립무용단원 일부의 공연이 있었다. 협소한 장소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안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홍현수는 마치 조명담당자처럼 담담히 무대에 빛을 주고, 어둠을 가져왔다.
프라미스교회에서는 대규모로 준비한 공연단과 대조적으로 객석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된 관계자들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썰렁하기 짝이 없는 행사였다. <한량무> <교방춤>과 전통을 응용한 남자무용수이 공연에 이어 전통의 춤사위를 기반으로 몸짓의 기호를 현대화한 <천지인으로 수놓다>가 공연되었다. 한국인과 미국 무용수들은 한국의 전통 춤사위를 응용한 몸짓에 따라 한국적 이념이라 할 천(天), 지(地), 인(人)을 상징하는 세계관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서사성이 부족한 무대에서 무용의 구조파악에 집중하기에는 흔들리는 시선은 어쩔 수 없었던 순간, 무대에 설치된 영상에서는 한글 자모가 모이고 흩어지며 부서지고 교합하는 이미지를 내보내 주었다. 강렬한 음악에 맞추어 터져나가는 글자의 이미지들은 춤에서 주제를 찾아내기 애매한 지점에서 아주 적절히 맥락을 짚어주었던 것이다. 홍현수의 미디어 아트가 무용의 단순 배경이나 조명이 아닌 ‘공동작업’이라 지칭하는 것도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점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동원된 무용이었지만 미디어에 의해 불통의 벽은 소통이라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었다.
연극, 음악, 필름, 무용 등의 공연예술 장소로 각광받는 뱀 피셔에서의 공연은 한미헤리티지교육재단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글교육을 위한 행사의 일환이라고 하는데 왜 특정 개인의 업적이 빛나는 무용공연을 공적 자금으로 후원하는 가에 대한 의문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극장이 필요로 하여 초청한 공연이나 공식행사에의 초청이 아닌 바에야, 보다 공공의 성격을 띠거나 한국문화적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를 만들어야 함은 국수주의가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 정작 실지로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공연은 프라미스교회에서와는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간에도 새로워질 수 있는 공연예술에 시각예술로서 미디어아트는 어떻게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어둔 객석에 자리잡았다.
전통을 보여주는 ‘한국무용 역사기행’에서 조명은 여명에서 시작되어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그리고 황혼에 이르는 하늘의 다양한 변화를 표현하였다. 한국 전통춤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부분은 인생을 즐기는 한량의 나긋나긋한 춤과, 그를 유혹하는 기생춤이 서두를 장식하였다. 한국 전통춤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듯한 구성에 잠시 당혹감을 감출 길 없었음은 그 자리에 있는 식견을 갖춘 이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어 장고춤과 창작무로 이어지고 2부 <천지인을 수놓다>는 한국의 전통 춤사위를 기반으로 창작한 현대무용이 이어졌다. 홍현수의 미디어는 이 뜬금없는 향연에 동원된 무용수의 몸짓들을 하나의 동작으로 보고 인터렉티브한 광선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순간의 예술로 구현되었다. 서양에 전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의 전근대적인 해결책이 비록 소극적이나 현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작업에 의해 예술로 보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프라미스교회에서 사운드에 반응하여 움직이던 한글 자모로 이루어진 영상은 뱀 피셔에서는 변형되어 무용수들의 군무에서 부드럽게 투사되는 방식으로 응용되었다. 무용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공간의 규모에 따라 변형되듯 미디어 아트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생되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컨솔인 Xbox 360을 위한 모션 센서 Kinect에 의해 감지되고 C++와 OpenGL을 기본으로 한 Openframeworks를 사용하여 무용수의 동작이 광선을 통해 인터렉티브한 결과를 바닥과 벽면에 투사하였다. 공간의 협소함에 의해 물결치는 효과는 크게 반감하였지만, 미세한 무용수의 동작을 시각화하여 무대를 하나의 화면으로 보이게 하였다.
에디 킴은 바흐의 <무반주첼로> 프렐류드 연주로 공연에 참여하였다. 첼로를 향해 무용수들이 모이는 부분에서 조명은 사각형에서 점점 작아져 무용수들을 압축하는 듯 보였다. 마치 이상의 <날개>에서 빛의 은유처럼 보자기 만했던 빛은 손수건 만해졌다가 사라졌다. 그 응축의 장면은 공연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음악과 무용과 미술이 함께한 순간인 2분은 15분은 족히 되는 무용에서 어느 장면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체 언어는 사라지고 건조한 청각의 감각과 눈부신 빛만이 남게 된 것은 장르의 문제만은 아닌 성 싶다.
예술에서의 융합은 주지하듯, fusion이 아닌 unity의 의미이다. 그것은 섞이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보(相補)하여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융합은 오늘날 과학과 인문, 예술을 구분하는 근대를 초극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뉴욕에서 무용, 음악 그리고 미술이 한국의 전통과 현대라는 명분 아래 융합한 현장은 서양에서 동양이 어떤 방식으로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게 한다. 전통으로 드러낸 모습은 탁월한 식견에 의해 추출된 것이어야만 그 의미가 있으며, 미래를 위한 새로움이란 현재의 예술적 상황을 명확히 인지한 다음 강구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새로움이 넘치는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의 예술은 어떻게 과거를 보여주고 미래를 드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예술가 개인의 역량에만 달려 있음은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