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박정애 개인전
전시장소 : 공평아트센터
전시일정 : 12월 11일 - 17일
박정애, 새벽, 합판에 조각, 채색, 100x120cm, 2013
박정애가 긋고 파고 떠낸 자취는 나무의 표면에 선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그려낸 형상들과 선들이 나무의 피부위에서 자연스럽게 응고되어 있다. 마치 눈 속의 발자국 같은 것,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연상시키는 선들이다. 동시에 사람의 형상과 개와 새, 눈물의 이미지가 있고 낮잠을 자고 있는 이나 술자리에 앉은 여러 사람들의 자취가 있다. 문득 삶에서 마주친 것들의 형상화이자 그것들을 가슴 속에 담아둔 사연이나 상념들이다.
애초에 박정애의 모든 작업들은 일상에서 깨달은 것들을 시어처럼 단출하게 잡아채어 이를 응고시켜왔다. 간결하고 압축적이며 힘 있는 형상과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의 연출은 이 작가의 매력이다. 더구나 삶의 반경에서 접한 모든 것에서 작업을 견인해내고 현상 너머를 굽어보는 예지랄까, 맑고 따스한 마음의 결이 감촉되는 점이야말로 의미 있는 지점이다. 작업을 삶과 분리시키거나 특정한 미술의 담론에 국한시키는데서 벗어나서 자기의 생 자체에서, 삶의 수행에서 자연스레 작업의 실마리를 잡아내는 있다. 동시에 일상을 소재로 한 무수한 작업들이 지닌 소재주의나 얄팍한 감성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빛난다.
좋은 작업은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의 맑음에서 풀려나온다. <새벽>이란 작업은 투명한 블루 톤으로 적셔진 화면에 마치 한 획으로 그어진 듯, 무릎에 손을 엊혀 놓고 상념에 잠긴 듯한 이의 측면 실루엣이다. 얇은 깊이를 가진 이 음각의 표면은 홀로 있는 이의 고독과 그 고독으로 인해 가능해진 투명한 경지를 선화처럼 안긴다. 모종의 선미가 감도는 이미지이자 깊이를 지닌 선의 맛이 일품이다. 나무의 피부에 새긴 드로잉이자 음화이며 동시에 판화이기도 하다.
그녀의 모든 작업에는 모든 것을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 앞에서 생사와 소멸의 섭리를 그대로 허용하고 계절의 자연스러운 변화 앞에 묵묵히 자기 생을 이어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도와 그 하나하나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묻어난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작가는 그러한 단상을 단호한 합판의 피부위에 자신의 온 몸을 극진히 밀어내면서 이미지, 구멍으로 새겼다. 빈자리가 역설적으로 모종의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구멍, 빈자리로 생겨난 저 형상은 무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가 무에서 태어나 무로 사라져버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저 부재의 자리는 있음의 소중함을 정성을 다해 기술하다 자진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