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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숙의 놀라운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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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경기대예술학과 교수, 미술평론가)

전시명:김명숙 개인전
전시일정:11.22-12.2
전시장소:담갤러리

김명숙은 오로지 얼굴 하나만을 그렸다.  특정인의 초상이자 모든 인간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 얼굴하나하나는 작가의 삶에서 접한 얼굴이자 상처처럼 남은 얼굴이다. 맹인소년, 비구니, 암으로 죽은 이의 얼굴, 부인을 살해한 광부의 얼굴(미국에 체류 시 신문에서 접한 사진), 몇 해 전 돌아가신 옆집 할머니의 얼굴, 그리고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이들의 얼굴, 그로니까 니체, 바슐라르, 고야 등의 얼굴이 장지에 목탄과 먹물로 그려졌다. 어둡고 검은 얼굴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비장한 분위기에 젖어있다. 작가는 종이위에 경질의 재료를 섞어서 우아하고 무거운 얼굴, 영혼을 그리고자 했다.

모든 그림은 불경스러운 욕망이다. 그것인 가시화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간절히, 절실히 기원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김명숙의 그림은 그런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종이의 표면을 뚫고 찢고 헤집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얼굴 하나를 간절히 그리고 그렸다. 저 얼굴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고 동시에 인간의 몸이란 한계 안에서 초월성과 영원성으로 빛나는 표정 하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김명숙, 무제, 장지위에 먹물, 2013


나는 김명숙의 이 얼굴그림에서 권진규의 조각상을 본다. 두 작가 모두 깊음을 갈망하고 추구했다. 김명숙은 모노톤의 색채로 칠하고 긁어내고 덧칠하는 특유의 드로잉 작업으로 얼굴을 그렸다. 수많은 선의 흔적들이 빛과 어둠을 만들어내고, 형상을 두드러지게 했다가 무너뜨리기도 하고, 침잠과 생명의 세계를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선의 흔적들, 덧칠, 긁어냄에서 작가의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는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하고, 여기에 먹물을 칠하고 뿌렸다. 얇은 단면에 종이의 표면을 헤집듯이 상처내고 있는 그의 선들은 재현과 재현의 불가능 사이에서 동요한다.

한 가닥 선은 그대로 자신의 육체와 감성의 혈관들이 되어 얹혀있다. 이 촉각적인 선들, 선들의 촉각화는 여성만의 감각이다. 여성은 시선 보다는 촉각이란 감각을 통해 세계를 만나고 느끼고 인식한다. 그것은 눈에 의존한 남성의 망막중심주의가 접근할 수 없는, 체험할 수 없는 여성만의 감각이다. 수많은 선들은 도저히 재현해낼 수 없는 그러나 끝없이 상기되는, 자신을 괴롭히고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세계,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오로지 그어질 뿐이다.

그래서 그 그림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비껴나고 그 어디에도 종속되거나 범주화할 수 없는 그림으로 빠져나간다. 촉각적인 선, 육체화 된 선들은 대상의 재현이나 외형의 윤곽을 가까스로 연상하는 선에서 멈추고 화면 전체를 빼곡히 덮치면서 그 모든 선들 하나하나를 되살린다. 이 비현실적인 선에 의해 우리들은 작가의 정신을 날것으로 만난다. 어둡고 탁한 경질의 단호한 선들을 덮고 있는 유동적이고 액체성의 먹물이 표면을 감싸고 있다.

김명숙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단호한 표정을 지닌 이 얼굴에서 눈은 강렬하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정신적인 비약이 이뤄지는 한 순간이자 깊은 심연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같다. 작가는 그 같은 상황, 상태를 동경한다. 자신을 그런 순간으로 몰입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그린 얼굴은 결국 자신의 마음의 자화상인 셈이다. 누구도 짓지 못한 그런 표정을 지닌 얼굴을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그림이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이상의 충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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