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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명화를 만나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Masterpieces of Modern Korean Painting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13.10.19 ~ 2014. 3.30

무르익은 가을, 국립현대미술관은 도심의 고궁에서 한국 회화 걸작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명화를 만나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는 한국회화사에 큰 흔적을 남긴 화가 57명의 작품 100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근대적 표현의 구현’, ‘새로운 표현의 모색’, ‘전통의 계승과 변화’, ‘추상미술의 전개’로 나누어진 이 전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회화의 큰 흐름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혜성 같이 빛나는 작품을 선보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역사적인 접근보다는, 친근하고 잘 알려진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오롯이 화가의 예술적 성취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명작전이다. 전시장에는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뿐 아니라 천경자, 이응노, 박래현, 이성자, 김기창 등 개성과 자의식 강했던 화가들의 체취가 그윽하다. 상기되고 들뜬 관객들의 발걸음이 연일 이어지는 덕수궁은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미술을 편하게 호흡하고 음미하는 뜻깊은 문화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이중섭, 황소, 1953년경, 32.3x49.5, 종이에 유채, 개인소장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130x97, 캔버스에 유채, 삼성미술관 리움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1959, 150x117, 종이에 수묵담채, 개인소장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232x172, 면천에 유채, 개인소장


덕수궁, 한국근현대미술의 산증인
내년 봄까지 이어질 향취 깊은 이 전시는,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을 축하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이 개관함으로써 바야흐로 근현대와 컨템퍼러리 미술을 아우르게 되었다. 2015년 청주관을 개관하면 아카이브 센터와 수장고를 두루 갖춘 국립미술관으로서의 면모를 명실공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가 열리는 덕수궁미술관은 앞으로 한국과 외국의 근대미술을 담당하게 될 곳으로, 1998년 근대미술 전문관으로 개관한 이래 근대기를 조망하는 다양한 기획과 친근한 전시로 시민들의 호응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열린 특별전《덕수궁 프로젝트》는 대한제국기와 고종황제 그리고 운현궁에 얽힌 역사를 현대작가들의 재해석으로 드러내어 각계각층의 시선을 끌었다. 사실 근대미술과 덕수궁과의 인연은 훨씬 이전부터 각별했다. 



1938년 덕수궁 서관(현 덕수궁 분관)으로 이전한 이왕가 미술관과 그 내부


1938년부터 1954년까지 이곳은 이왕가미술관으로 근대기 공공미술관으로 역할을 하였고, 1973년부터 1985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보금자리였다.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시대를 열면서 기획한 《한국현역화가 100인전》이 열린지 올해로 꼭 40년 지났다. 또한 1960-70년대를 기억하는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전시장을 찾으며 예전의 국전을 향수할 지도 모르겠다. 근대기부터 산업화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의 미술과 함께 해온 덕수궁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이야기가 거듭 쓰인 양피지(palimpsest)라 할만하다.  

근대인. 근대적 자아 



이마동, 남자, 1954, 130x97, 캔버스에 유채, 삼성미술관 리움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62x50 ,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1부는 이마동이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한 <남자>에서 출발하여,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을 거쳐 김인승의 <화가의 스튜디오>와 배운성의 <가족도>까지 이어진다. 초입에 걸린 세련되고 결의에 찬 모던보이의 시선은 시인 이상의 예민한 자아와 부딪히며, 식민지 근대화의 모순된 양날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또, 김인승이 그린 <화가의 스튜디오>의 세련된 서양풍 미장센은 배운성이 한옥을 배경으로 그린 가족 군상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 일련의 인물화 초상과 군상이 중심이 되고 있는 1부 전시의 부제가 ‘근대적 표현의 구현’인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근대인의 속살, 그 내면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인승의 <화가의 스튜디오>는 모순된 시대, 근대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내의 잔잔한 빛을 받으며 긴장을 풀고 스케치에 몰두한 화가의 삼매경은 관람객을 동화시킨다. 붉은색 타탄체크의 방석과 살구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분홍색 담요는 모노톤의 배경과 멋지게 어울려, 언뜻 휘슬러의 <어머니의 초상, 회색과 검은색의 조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조형적 질서를 느끼게 된다. 이 우아한 세계는 식민지 시대를 강압과 수탈의 시공간으로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이 그림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은, 왜색 아카데미즘의 전형이라고 할지라도 조화로운 회화적 아름다움을 쉽게 거부할 수 없듯이, 근대기 식민지 시대의 수혜를 받은 엘리트들의 세계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에 일찍이 진출한 배운성이 멀리 독일에서 조선을 생각하며 그린 기이한 대가족의 군상은, 한마디로 잘라 해석할 수 없는 우리의 근대를 숙고하게 한다.


김인승, 화실, 1937, 163x194, 캔버스에 유채, 국회도서관



배운성, 가족도, 1930-35, 140x200, 캔버스에 유채, 전창곤 소장    


한국 아카데미즘의 재인식
이번《명화를 만나다》전이 2008년에 열렸던《한국 근대미술걸작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중섭, 박수근, 오지호 등의 익숙한 이름과 작품 이외에 관전(官展) 작품들이 많이 출품된 것이다. 김인승의 <화실>이 근대기 일본식 고전주의 유화의 대표적인 예라면, 유경채, 장리석, 박상옥, 박항섭 등과 같은 1950-60년대 국전풍을 대표한다. 1950년대 박항섭의 <가을> 은 고갱을 연상시키는 원초적 풍경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 같은 목가적 이상 풍경화는 이인성의 향토주의를 계승하면서 현대화를 모색했던, 회고적이지만 아름다운 상실의 풍경, 미증유의 재난을 맞아 원초적 세계를 갈망한 한국인의 내면의 풍경이라고 할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의 전위미술 운동이던 앵포르멜 작품의 부재이다. 1950-60년대 국전에 대한 저항의 선언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등극한 앵포르멜 추상미술에서 가져올 걸작이 없었던 것인가? 이 전시는 미술사와 대중 전시현장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간 학자와 비평가들의 괄시를 받아왔던 관전 그림들은 압도적 크기와 조형적 완성도 때문에 전시장에서는 상당한 대중 흡인력을 지닌다. 게다가 박래현의 <시장의 여인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도 국전 출품을 위해 제작된 것을 생각하면, 한국성과 현대화의 추구라는 목표에서 국전과 재야의 모더니즘이 언제나 다른 길을 갔던 것은 아니었다. 1969년 문화공보부가 미술계의 숙원을 받아들여 국립현대미술관을 설립한 목적이 실상은 국전을 위해서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관전을 배제하고는 한국근현대 미술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항섭, 가을, 1956, 162x130,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1950년대의 분출된 실험정신 


이응노, 항원정, 1959, 124x172, 종이에 수묵담채, 개인소장


박래현, 노점, 1956, 267x210, 화선지에 먹,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3부는 전통의 계승과 변화라는 제목으로 한국화의 명작들을 모아놓았다. 서양화에 비해 작품 수는 적지만 그 감동은 수의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화단의 당면 목표였던 현대화와 국제화에 대한 열의와 실험정신은 새삼 전통 화가들에게서 분출하였다. 이응노는 <향원정>에서 추상 표현주의 드리핑과 즉흥성을 수묵 산수화의 풍경에 거침없이 적용하였고, 박래현은 당당한 시장여인들을 통해 20세기 초반 유럽 모더니즘의 시원이었던 원시주의와 입체주의를 동시에 해결하였다. 남관의 문자 그림이나 김흥수나 박영선의 큐비즘이 미완의 조형실험으로 남은 것에 비하면 이응노, 김기창, 박래현의 수묵채색화의 성과는 한 걸음 앞서 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동양화와 서양화 범주의 문제라기보다는 개별 작가들의 역량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기 이질적인 매체였던 유화보다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붓과 먹의 표현이 우리의 손과 정서, 감각에 자연스러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천경자, 목화밭에서, 1954, 114x89,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허건, 삼송도, 1974, 131x103,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현대미술관


특히 이 전시회에서 천경자의 채색화들은 관람객을 강렬하게 흡입하고 있었다. 1954년 <목화밭>이나 1968년 <청춘의 문>에서 화가는 이국적인 자기 환상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민족이나 이데올로기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격렬하고도 절제되지 않은 화가의 환상은 나르시시즘의 영역에까지 닿고 있다. 수난과 발전이라는 공동체적인 서사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에게 천경자의 에로티시즘을 띤 솔직한 감정의 고백은 낯설었다. 게다가 천경자는 즐겨 사용하는 색채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왜색이라는 오명을 달아야 했고, 인물과 구상화를 주로 그려 추상화 중심의 화단정치에서도 변방이었다. 그러나 화사한 노란 색 모자를 쓴 <길례언니>부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까지 연달아 걸린 네 점의 천경자 회화는 노소를 막론하고 남녀 구분 없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박래현, 천경자. 담채수묵 위주의 무채색 한국성에 위배되는 여성화가들의 강렬한 페이소스는 이상범, 노수현, 허건의 고매한 남종화풍 수묵화의 세계와 부딪히며 재미있는 파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그림과 관객의 새로운 교감은 우리의 의식이 진작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음은 물론이고, 수묵화 중심의 한국화 서술 역시 수정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경계 밖의 대가들
1973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이전하면서 그 개관전으로 열린 《한국현역작가 100인전》과 2008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기획된 《명작을 만나다》에 이어서 2013년에 야심차게 기획된 이번《명화를 만나다》는 거듭 반복되는 근대미술 특별전이지만, 새로운 기획에는 예전과 다른 스토리가 첨가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1960년대 1970년대 경계 밖에서 만개한 화가들의 이야기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성자, 내가 아는 어머니, 1962, 130x195, 캔버스에 유채, 이성자기념사업회


한묵, 푸른 나선, 1975, 198x153,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이성자는 전후 최초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국미술가이다. 남관, 박영선, 손동진, 김흥수가 파리에 건너갔을 때 이성자는 에콜 드 쇼미에르의 조교이자, 파리 최고의 갤러리 샤르팡티에의 전속화가로 우뚝 서 있었다. 1965년 국내 첫 전시를 열 때까지 이 여성작가의 소식이 국내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이할 정도이다. 화가는 가족과의 이별의 회환을 베틀을 짜듯 목판화를 닮은 화면에 펼쳐놓았다. <내가 아는 어머니>라는 제목에서 묻어나는 화가의 사적인 기억은, 추상의 형식실험이 중요했던 국내의 현대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친근함으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한편 가까이 걸린 한묵의 나선형의 기하학적 공간 역시 국내의 추상화단에서는 보기 힘든 장쾌함을 선사한다. 한묵이 프랑스에서 추구한 기하학적인 숭고함은 소박한 자연미를 중시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는 별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달팠던 전시(戰時) 부산에서 화가들을 보듬으며 묵묵히 버텨낸 화가의 강직함이 이루어낸 열매였다.


이봉상, 산, 1958, 105x106,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윤중식, 풍경, 1968, 145.5x97,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비단 지역뿐 아니라 미술사에도 경계지대가 있다. 이봉상, 이대원, 윤중식과 같은 근대기 원로들은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근대기 유입된 포비즘을 농숙하게 소화했다. 시원한 산의 골격과 감각적 색채가 어우러지는 이봉상의 그림, 반복적인 형식화의 과정을 거쳐 캔버스에 꽉 들어차는 찬란한 빛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대원의 과수원, 노을진 자연의 장쾌함을 서정적으로 소화한 윤중식의 작품이 그렇다. 실제로 이들 중진 화가들은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과 함께 1970년대 이후 한국미술시장의 붐을 주도하였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바로 그 작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오지호, 풍경, 1968, 145.5x97,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100점의 작품이 출품된 《명화를 만나다》전은 복잡한 기획 의도를 떠나, 관객이 좋아하는 바로 그 작품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전시이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한국에 손수 보내온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직접 만나는 느낌은 언제나 특별하다. 화가는 멀리 고국의 화단에 자신의 건재를 알리듯 짙은 잉크 빛으로 굵고 선명하게 한 점 한 점 찍어 내렸다. 고독을 떨쳐버리듯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붓질에서 한국현대미술의 결정을 보게 된다. 마주한 박노수의 수묵화 <유하>의 감동도 컸다.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 검푸른 버드나무의 무성한 가지와 성하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를 젓는 소년의 모습에서, 청년 박노수의 힘과 유연함이 전해진다. 한국적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오지호의 <남향집>이 근대회화 전시에서 자주 보아서 익숙하다면, 화가가 광주에 살면서 1971년 그린 내장산 설경에서 자연의 청량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자연을 관조하며 그려낸 남도풍 유화의 참맛이다. 대작 <절구질하는 여인>과 <농악> 과 함께 전시된 박수근의 낡고 작은 그림 <행인>은 이제 무채색의 시공간으로 흘러 간 한국의 20세기를 추억하게 한다. 시력을 잃고 한 눈으로 그려낸 조촐한 그림이 주는 감동은 당대를 경험했던 노년이든, 인생의 무게를 아는 중년층이든 상관 않고, 전시장을 찾은 발랄한 젊은이들에게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었다. 고전의 향기가 그러하듯, 박수근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의 궁핍한 시대에 대한 공통의 향수(Collective nostalgia)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박수근, 행인, 1964, 34.5x20.5, 캔버스에 유채, 홍익대학교 박물관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에게는 설문조사가 이어졌다. 최고의 작품과 작가를 선정하는 조사지였다. 이번 전시의 운영위원이었던 근대미술사학자 김현숙과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씨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이중섭의 <붉은 노을의 소>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근현대미술의 트로이카로 꼽았다. 그러나 새삼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의 소리에 관람객들은 제각각 반응하고 있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말을 빌자면, 한 점 한 점이 백년이 지나면 보물로 국보로 지정될 명작들이다. 깊어가는 겨울, 좋은 것을 보는 안복(眼福)을 두 번 세 번 누려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서 6만을 넘었다는 이번 블록버스터 한국근현대미술전이 끝나는 2014년 3월,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는 누구일지 그 결과가 미리 궁금해진다.  


글 김미정(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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