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Zip하우스 - 안현숙
프로젝트진행 장소: 서울역 구역사 앞
프로젝트 일정: 11월 8일-9일
이른바 국민작가로 박수근과 이중섭을 드는 데 주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은데 6.25전쟁 때 월남한 작가, 생전에 영화를 누리지 못하였으나 오늘날 저택 혹은 여러 사무실에 임대를 줄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빌딩 정도와 작품 한 점의 가격이 맞먹는다는 점들이다. 이중섭은 원산에서 아내와 아들 둘 그리고 조카를 데리고 아기 기저귀마저 부족할 정도의 빈손으로 군함을 얻어탔다. 박수근이 월남 작가인 이유는 그가 살던 강원도 양구가 전쟁 발발 당시는 3.8선 이북이었던 때문이다. 이중섭은 부산으로 갔다가 제주도까지 갔으나 생활고로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서울 창신동에 작은 집칸이나마 장만했던 박수근은 이중섭에 비하면 좋은 세상을 살았던 셈이다.
이중섭이 오늘날 우리 옆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무어라 부를까? 그렇다. 기러기아빠에 홈리스다.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오갈 데 없던 그는 밤늦게 어울리던 친구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했다. 박고석의 집 또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밤이 늦어지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아침이면 일찍이 나서고 없던 이중섭이 묵었던 방에서 박고석의 아내는 종이라는 종이-이를테면 종이봉투, 공책모서리 등 빈곳이면 빼곡이 연필로, 펜으로 끄적여서 낙서가 가득한-들을 ‘휘휘’ 모아서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폈다. “내가 미친년이었지.”라고 자조적인 웃음으로 전한 말은 돌고돌아 지금까지도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래도 그때는 오갈 데 없는 친구들을 재워줄 문간방이 있었고 사랑채도 있었다. 세상과 현관문 하나로 집과 밖을 구분하는 지금, 어떤 이들은 ‘집 밖의 사람들’로 주변을 서성인다.홈리스 이른바 노숙자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가 서울역이다. 11월 8일 금요일 저녁 일군의 사람들이 갑자기 새로 단장하여 엄청난 규모의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한 옛 서울역사 앞에서 국민체조를 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귀에 쟁쟁한 음악과 구령에 맞추어 국민체조를 마친 이들은 각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종이상자를 펼쳐 길게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집’을 펼쳤다. 작가 안현숙이 고안하고, 주변에서 모아들인 헌옷을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자가 ‘미싱질’을 해서 만든 ‘집’이다. 몇 벌의 겉옷으로 구성된 집은 지퍼가 있어서 여닫을 수 있으며, 몸 하나 뉘이기에 안성맞춤인 크기에 누웠을 때 바닥이 되는 뒷부분은 전면보다 두터워서 좀더 푹신하다. 스스로 노숙자가 되어 이리저리 수레를 끌고 다녔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이다.
노숙자를 위한 조각, 노숙자를 위한 조립형 집 등 동서양 현대미술 작가들이 그동안 고안한 노숙자를 위한 많은 거주지 중 가장 ‘콤팩트한’ 형태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압축했다는 의미의 Zip을 ‘집’에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것은 돌돌 말면 보이스카우트의 침낭보다 작아져서 휴대하기에도 용이하다. 어디서든 펴면 집이 되는 이 ‘집’은 개념으로는 유목민의 게르와 다를 바 없다. 여러 옷을 잇댄 탓에 저절로 알록달록하여 실크로드에서 만나는 민속품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전통도, 위엄도 없는 이 작품은 공공미술의 영역에 준엄하게 위치한다.
집으로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한국사회에서 노숙자는 모든 안전망의 바깥에 존재한다. 거주지가 없다는 것은 위생, 치안과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작가가 옷을 모아 집을 만들 때, 단색의 세련된 색상이 아니라 일부러 여러 색깔을 조합하여 알록달록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두운 곳에 위치한 ‘물체’가 아닌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노숙에서의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종이박스나 신문지가 아닌 ‘천’이 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각은 집이 없는 이들이 겪는 불안감을 토닥여줄 것이다. 몸을 뉘인 후 지퍼를 올릴 때 문을 닫은 것 같은 안도감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신청을 받아 노숙 체험에 나선 20대의 젊은 여성이 서울역사와 도로의 경계선에 줄지어 배치된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숙자분이 화분보고 말한대요. 입을 열어 말할 곳이 아무도 없어서요.” 집이 없다는 것은 단지 휴식의 부재만이 아닌 사회에서의 분리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방의 휘황찬란한 네온과 광고판이 마치 대형 텔레비전 같다고 말한 30대의 ‘노집 체험’ 여성은 체험으로서가 아닌 이해로서 노숙에 접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잠들지 못하는 그들 옆에서 이미 ‘진짜 노숙자’들은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 곤히 잠들어 있다.
퍼포먼스 "24시간/1,440분/86,400초 홈리스 체험"
국민체조로 시작하여 국민체조로 마무리된 퍼포먼스는 <24시간/1,440분/86,400초 홈리스 체험>이다. 우리도 ‘국민’임을 말하기 위하여 선택한 ‘국민체조’라는 소박한 의미에 웃음을 흘리게 된다. 요셉 보이스가 카셀공과대학에 돌더미를 쌓아두고 돈을 받아 팔고 그 돈으로 나무를 심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웃음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을 게다. 전후 집단적 외상을 안고 있는 독일에서 요셉 보이스가 제시한 사회적 조각은 공고한 기성관념에 젖은 관람객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사회를 구성하는 데 동참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인 치유, 돌봄은 현대미술이 관람객을 접촉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IMF 이후 급속화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귀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전후 집 없이 떠돌던 이들을 상기시킨다. 경제적 전쟁의 패잔병, 상이용사들은 ‘노집’의 인물들로 서울역 앞을 서성인다. 그들 전반을 감싼 패배의식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함께 국민체조를 해주고, 함께 몸을 뉘임으로써 사회구성원임을 일깨우는 순간이 바로 <24시간/1,440분/86,400초 홈리스 체험> 프로젝트이다. “새로운 형식의 창조성은 곧 잠재력이다. 인간은 정신적 능력을 짊어지는 폭이며, 그것에 의하여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이 이룩된다.”고 요셉 보이스는 말했다. 미술관 바깥에 놓인 실지 거주하는 <접는Zip집>은 단순하게 생각해도 누더기가 아닌 위기의 경계선을 뛰어넘기 위한 개진적인 방안을 제공하는 ‘유용한 미술’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