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박찬우 전
전시장소 : 중정갤러리
전시일정 : 2013.11.12 - 11.27
박찬우, 사진, stone 1019
타원형의 돌이 물에 담겨있다.(박찬우, 중정갤러리, 11.12-27) 한국 산하의 부드러운 능선이나 바다거북이의 등을 닮은, 수평으로 둥글게 내려앉은 돌은 희박한 색채와 조심스러운 표면의 질감을 유지한 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흡사 돌이 반신욕을 하고 있는 것도 같다. 돌의 중간부분으로 차들어 온 물에 의해 생긴 선이 돌을 양분하고 있고 그로인해 수면 위와 수면 아래에 잠긴 돌은 색채와 질감에서 조금은 다른 얼굴, 몸을 보여준다. 돌을 채운 물에 의해 만들어진 묘한 풍경이다. 흰색의 낮은 높이를 지닌 사각형의 틀과 물, 돌이 만나 이룬 이 풍경은 보는 이에게는 오로지 한가운데에 자리한 돌 하나(혹은 몇 개의 돌)만을 보여준다. 온통 흰색으로 가득한 화면에 놓인 돌, 그리고 그 돌을 양분하고 있는 수면, 돌의 그림자만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물과 바탕의 가늠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화면은 인화지의 표면, 피부이자 물과 공기의 영역이고 마치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영역이다. 그것은 비어있으면서도(상상이 가능한 여백) 실은 돌에 개입되는 현상이 되고 실제 돌에 흔적을 남기고 그 돌을 투영하게 해주는 물리적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사진은 그런 것들을 순간 눈이 멀게 만들고 주변 풍경을 모조리 증발시켜버린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나 특정 사물과의 연계성이 죄다 지워지거나 망실된 상태에서 오로지 돌만이(조심스레 들여다봐야 물에 잠긴 돌임을 알 수 있다)놓여있는 이 풍경은 실재 하는 풍경이면서도 실은 낯설고 이상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 이상하다는 느낌은 돌을 제외한 모든 배경이 온통 백색으로 물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 흰색은 실은 인화지의 색상이자 물의 색채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진이미지가 가능한 지지대(인화지)와 돌이 잠긴 물이 구분 없이 혼재해있는 상황성으로 인해 초래된, 미니멀하고 초절제된 구성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다. 미약하지만 색채가 있는 지점은 돌의 표면이다. 흑백사진으로 보이지만 실은 컬러사진이다. 컬러사진으로 이루어진 단순성이 상당히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고 있다. 오로지 수면 위와 물 아래 잠긴 돌의 표면만이 색채를 머금고 있고 미세한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은폐되고 가려진 화면에 겨우 보이는 부분이 조심스레 이제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최후의 색채를 내뿜고 있다. 슬그머니 촉각적인 부분을, 관능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박찬우는 자연의 순리에 기꺼이 응해서 남겨진 마지막 조각이자 물살에 문드러지고 닳아진 살들로 이루어진 돌을 찾았고 그 무심하기 그지없는 상을 사진에 담았다. 당연히 물에 돌을 담고 찍었다. 돌의 형상은 물로 인해서이고 돌은 물을 만나야 아름답다. 돌과 물은 한 쌍이 되었다. 물에 잠긴 돌과 물 밖으로 나온 돌이 데칼코마니처럼 놓여있다. 돌이 지어내는 선과 물에 의해 드리워진 돌 그림자의 선이 절묘하게 일치한다. 지극히 얇은 수면을 경계로 돌은 슬그머니 절개되어 있는 듯하다. 물을 지긋히 누르고 앉아있는 돌의 무게와 부피가 묘하게 보는 이의 감각을 건드린다. 물의 부력과 돌에 깃드는 중력, 투명한 공간과 공기의 저항을 받는 외부가 공존한다. 그 사이에 놓인 돌의 생애가 인간의 삶을 은연중 오버랩 시킨다. 시간과 세월에 의해 조탁된, 피치 못할 얼굴 하나를 들고 현실과 이상 속에서 부침을 겪는 내 누추한 육신말이다. 그러나 박찬우가 찍은 돌 사진은 사실 그러한 감상보다는 절제된 조형감각과 눈부신 색채, 최소한의 이미지와 색채를 겨우 보여주는 구성 속에서 좀 더 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