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선(禪).선(善).선(線) : 선묘불화(線描佛畵)-빛으로 나투신 부처
전시장소 : 동국대학교박물관
전시일정 : 2013.10.25.-2013.11.22.
회화사에서 고려시대는 오래 동안 암흑에 비유된 적이 있었다. 기록에는 다양한 그림의 역사가 전하지만 그를 확인해줄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광(無光)의 고려 그림에 1970년대 중반 이후 눈부신 빛이 발하면서 등장한 것이 고려불화(高麗佛畵)였다.
<아미타 삼존도(阿彌陀三尊圖)> 1359년 견본감지(絹本紺地) 금니선 164.9x85.6cm 일본 개인
이후 그 화려하고 장엄한 실체가 속속 발견되면서 고려의 미술 문화는 잃어버렸던 찬란한 고리의 하나를 되찾게 됐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이 테마에 매료돼 연구에 매달리면서 다양한 분야에 상당량의 연구가 축적되기에 이르렀다. 이 연구의 한 중심은 동국대를 중심으로 한 미술사 연구인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동국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고려불화 연구진이 ‘전체’로서의 고려불화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부분 세계에 대한 심화연구의 결과 하나를 일반에 소개하는 전시이다. 심화 테마는 선(線)으로만 그려진 불화이다.
<아미타 삼존도(阿彌陀三尊圖)>(1359년)의 천개 부분도
불화는 불교의 종교적 진리를 일반인들에게 눈에 보이는 세계로 그려 보인 것이다. 진리를 알기 쉽게 풀이해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화는 눈에 보이게 그린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자칫 보는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는 현상계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불화는 그려진 것인 동시에 그 자체가 진리임을 담고 있어야 한다. 장엄하게 그려지고 위엄에 가득 차게 그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아미타 삼존도(阿彌陀三尊圖)>(1359년)의 대좌 부분도
일정한 굵기로 물체의 윤곽을 나타내는 선은 순수하다. 거기에는 어떤 치장이나 꾸밈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색채를 버리고 선만으로 불화를 그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영원불변의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내기 위해 치장이나 꾸밈을 상징하는 색채를 버리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금색의 선의 세계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약사 삼존도> 1565년 견본주지(絹本朱地) 금니선 54.229.7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선으로만 그려진 고려 불화란 작년까지만 해도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존재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국내에 전하는 <약사삼존도(藥師三尊圖)>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석가설법도> 등 연대가 오랜 불화라고 해도 모두 조선시대 전기에 그려진 것들뿐이었다.
작년 4월 야마나시 현의 한 사찰을 현장 조사하던 동국대 정우택 교수는 그곳에서 ‘조선 불화’로 알고 있던 금선으로 그려진 불화 한 점에서 고려시대의 연기(年記)를 찾아냈다. 한쪽 구석에 희미하게 쓰인 표기속에 ‘지정(至正)19년’ 즉 1359년이라고 적힌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날 160여점 전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금선만으로 그린 불화는 작은 목판에 그린 것이 전부였는데 이를 통해 비단에 그린 본격 불화를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한 것이다.
<아미타 삼존도> 1581년 견본주지 금니선 65.9x33.4cm 한국 개인
이 전시는 이 불화 발굴에 곁들어 후속작업으로 진행된 이른반 고려후기에서 조선초기에 이르는 선묘 불화의 계통과 맥을 되집어 보자는 연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학술 조사와 연구결과가 전시의 형태로 일반과 만나는 것은 모든 대학 박물관이 꿈꾸는 이상적 기획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런 이상의 三拍子-조사, 연구 그리고 전시-를 모두 갖췄다고 할 만하다. 더욱이 동국대 박물관의 개관50주년 기념특별전으로 열려 더욱 뜻깊은 의미도 지녔다.
<석가설법도(釋迦說法圖)> 16세기 견본감지 금니선 60.0x51.0cm 경기도 박물관
후기할만한 내용으로 이 고려불화 선묘 <아미타삼존불>의 국내 소개는 불발로 끝날 수도 있었다. 처음에 소장처에서는 전시출품을 고사했다고 한다. 올봄 쓰시마 섬에서 일어난 불상도난 사건으로 이 불화도 ‘전시 이후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정 교수측의 여러 차례에 걸친 요청에 결국 승낙했으며 개막식에 즈음해 한국을 찾은 절의 관계자는 ‘한일 교류의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심정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한 일본 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