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서울 간송미술관 제85회 기획전- 진경시대화원
전시일정 : 2013.10.13.-10. 27
전시장소 : 간송미술관
계절의 여왕 5월과 한 해의 결실을 화려한 단풍으로 마무리하는 10월이면 자연스레 발길이 닿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성북동에 위치한 민족문화유산의 보고(寶庫) 간송미술관이다. 일본의 고도 나라(奈良)에서 정창원전(正倉院展)이 열리면 전시를 보기위해 나라국립박물관 밖에 수백 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간송미술관도 이제 관람을 위해서는 2-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간송미술관 입구에서 줄을 선 관람객들
‘민족 문화의 수호신’으로 지칭되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1962)은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당시 최고의 안목인 위창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춘곡 고희동(高羲東,1886-1965)의 도움을 받아 1930년경부터 문화재를 수집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간송미술관의 보화각(葆華閣)을 1938년에 건립했다.
그리고 소장품의 정리와 연구를 거쳐 1966년에 정식으로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이후 1971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일반 공개가 이루어졌다. ‘겸재 정선’전을 시작으로 해마다 어김없이 봄과 가을 각기 2주씩 열린 전시가 올해로 85회째를 맞이했다.
8폭 전부가 18년만에 다시 소개된 김홍도의 <관동팔경도>
올가을 기획전인 ‘진경시대화원’전은 우리 문화의 황금기인 진경시대(眞景時代)에 활동이 두드러진 김홍도(金弘道,1745-1806년 이후), 이인문(李寅文,1745-1824년), 신윤복(申潤福,1758?-1809년 이후), 김득신(金得臣,1754-1822년), 최북(崔北,1712-1786년경)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화원들의 걸작들이 두루 망라되었다. 이외에 숙종때 국수(國手)로 지칭된 진재해(秦再奚,1680 이전-1735년 이전)부터 김득신의 큰아들 김건종(金建鍾,1781-1841)에 이르기까지 21명의 화가들의 여러 장르에 걸친 주옥같은 다양한 명품이 공개되었다. 18세기초부터 19세기초에 활동한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별들의 합창이며 장엄한 오케스트라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도 <관동팔경도> 중 명경대(明鏡臺)와 구룡연(九龍淵)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정면 큰 진열장에 김홍도의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일괄 8폭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들이 일괄이 소개된 것은 김홍도 탄신250년을 맞아 199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간송, 호암미술관과 공동주최한 ‘단원 김홍도’특별전 이후 처음이니 18년만이다.
진재해 <고사한일(高士閑日)> 흑견황필 27.5x20.0cm
벽부장엔 동방삭(東方朔),기원전154-93)을 그린 <낭원투도(閬苑偸桃)>와 이미 조선 얼굴로 바뀐 달마(達磨)를 그린 <절노도해(折蘆渡海)>, <과노도기(果老倒騎)> 등 도석인물과 일괄 8폭 <화조화> 중 계절별 4점과 <모구양자(母狗養子)> 등 단원의 진경산수, 도석인물, 화조영모, 사군자까지 망라해 동시대 화단에서 조선의 화선(畵仙)으로 혁혁한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의양 <봉황산(鳳凰山)> 지본담채 32.3x26.6cm
<관동팔경도>가 걸린 진열장 바닥에는 이의양(李義養,1768-1824년 이후)이 청 연행사와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곳서 접한 외국인을 그린 <아랍과 태국의 사신[回回暹羅使臣])>과 명소인 <봉황산(鳳凰山)> <요동백탑> <도화동> 등 26점으로 이루어진《이신원사생첩(李信園寫生帖)》이 선보였다.
중앙의 편화장에는 김홍도와 동갑인 친구로 동시대 쌍벽인 이인문의 《한중청상첩(閒中淸賞帖》에 속한 <낙타(駱駝)> <준마(駿馬)> <선동(仙童)> <동정검선(洞庭劍仙)> 등 청신(淸新)과 세련 및 시정이 넘치는 명품 8점이 빛을 발했다.
이인문 <준마(駿馬)> 지본채색 30.8x41.0cm
변상벽(卞相璧, 1730-1773년 이후)의 <국정추묘(菊庭秋猫)>와 물고기 그림으로 유명한 장한종(張漢宗,1786-1815년)의 흔치 않은 초충도 계열의 <명선촉추(鳴蟬促秋)> 등도 출품되었다.
2층 전시실엔 내려다보는 독립장 안에 소품만 전시했으니 중앙엔 국보135호인 신윤복의《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30폭 중 12점과, 김득신의《긍재풍속화첩(兢齋風俗畵帖)》4점 등 풍속도가 전시실 중앙에 비중있게 점하고 있다.
김득신 <주중가효(舟中佳肴)> 지본담채 22.4x27.0cm
벽면을 따라 금니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진재해 ‧ 조선통신사 수행화원 함세휘 ‧ 어진을 그린 양기성 ‧ 김희겸 ‧ 최북 ‧ 현태순(玄泰純.1727-?) ‧ 김덕성 ‧ 김광백(金光白,?-1776이후) ‧ 김후신(金厚臣,1735-1782) ‧ 신한평(申漢枰,1735-1809이후)이 부인과 어린 신윤복 등 자녀를 담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다[慈母育兒]>‧ 김홍도 ‧ 김석신‧ 이명기 ‧ 이한철 ‧ 이의양 ‧ 김건종 등의 다양한 장르의 그림들이 시대 순으로 배열되었다.
현태순과 김광백 및 김건종 등은 유작이 몹시 드물어 간송미술관 소장품에 의해 비로소 화가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건 김희겸과 김후신, 신한평과 신윤복, 김득신과 김건종, 이의양과 이한철 등 부자의 그림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점이다. 조선후기 진경시대 난만(爛漫)한 우리 문화의 무게와 힘, 당당함 ‧ 어엿함 ‧ 독자성 등 그 위상과 이를 창출한 마냥 어질고 착한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민족성까지 읽을 수 있다.
신윤복 <정변야화(井邊夜話)> 지본채색 28.2x35.6cm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하나같이 일당백(一當百)의 걸작들이 펼쳐져 과연 우리 그림이 중국과 어떻게 다른지, 특징과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10월 22일 아침 우중(雨中)에도 개관 훨씬 전부터 장사진을 이룬 관람객, 오래 기다리다 뒷사람들에 밀려 짧은 시간 서둘러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아쉬움 속에서도 마냥 흐뭇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