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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전시명 : 성경희전 침묵 사이를 흐르는 바람
전시일정 : 9.26-11.6
전시장소 : 흰물결갤러리

 


paper garden . 2013. 캔버스에 장지와 안료 . 170 x 140 cm


 미술가의 작업실은 무용의 노동으로 가득하다. 그 일이란 쓸모없는 일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자 물질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일이다. 소모되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 작업하는 작가의 육체와 마음 또한 가혹하게 혹사당하고 탕진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업이란 것도 이 비정하고 무서운 자본주의사회에서 하등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거의 팔리지도 않는 이상한 물건이 된다. 하긴 작가들은 팔려고 작정하면서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팔지 않으면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거의 없다. 그러나 작품을 판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여간 작가들은 이러저런 고민 속에서 오늘도 작업실에서 무엇인가를 만든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그림 그리는 게 좋고 재미있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은 이기적인 이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의식과 생활에 대한 불안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좋은 작품을 한다거나 작품이 팔려서 생활이 가능하다거나 혹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아 나름 훌륭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혀 가늠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안개 속을 걷는 일과도 같은 작업은 오늘도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감행된다. 하여간 그려야 하기에 그렇다.


성경희 작업실 일부


 동양화가 성경희의 작업실은 송파에 위치한 낡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꽤나 넓어서 작업하기에는 여유로운 공간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십 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몇 번 이곳을 찾았다. 한지 위에 극소의 붓자국을 남기는 작업을 선보이던 작가의 최근작은 화면에 원형의 종이를 붙이거나 떼어 내고 물감을 칠한 자취들이다. 그 최근작이 지금 전시중이다. 적막한 느낌이 감도는 미색의 종이와 그 위에 가득 그려지거나 붙여지고 떼어낸 원형의 점들, 구멍들, 자국들이 가득하다. 오로지 점들만이 존재하는 화면이고 그것들은 특별한 메시지나 볼거리나 혹은 인위적인 연출 없이 그저 종이와 그 종이를 갖고 유희한, 얼마의 시간을 보낸 작가의 지극한 마음과 정성만이 달려있다.

작업실에서 봤을 때는 바닥에 온통 화면에서 떨어져 나온 원형의 작은 종이들이 쌓여있었다. 한정 없는 노동의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화면에 그려지거나 뗴어낸 원형 역시 그러하다. 모든 것을 환원시킨 원, 점만이 화면에 반복해서 도열해있고 무채색의 한정된 색상이 그 한지를 물들인다. 색을 머금은 원형의 점(콜라주)은 화면 가득 별이 되고 눈이 되어 반짝인다. 그렇게 작가는 한지를 작은 원형으로 오리고 이를 화면에 붙였다가 다시 떼어내는 일, 혹은 물감을 칠하고 수많은 점을 찍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을 점으로, 붓질로 환원하고 있다. 무모한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그 흔적을 지켜보면서 작가들의 이 무모성과 낭비야말로 유용성을 척도로, 시간을 자본으로 여기며 그 모든 여유와 고독, 무모성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구멍을 내는 유일한 일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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