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삼, 달빛, 캔버스에목탄화, 291x388, 2010
정문규 미술관에서 이재삼, 이재효 2인전이 열린다(9.12-11.10). 그들에게는 이른바 모든 것의 기준이 자연이라는 척도다. 그래서인지 이들 작업의 공통점은 자연인데 그중에서도 나무다. 이재삼은 나무를 목탄으로 정밀하게 그리고 이재효는 나무를 가공해 또 다른 나무, 나무로부터 파생된 낯선 나무를 만들어 보인다. 회화와 조각이란 방법론을 통해 동일한 나무를 평면에서 재현되는 극한으로 밀고 올라가는가 하면 나무의 내부와 외부를 심층적으로 벌여놓거나 그 나무가 지닌 질료성을 생생하게 들춰내는 작업이다. 그러니 이 둘은 나무란 존재를 놓고 각기 다른 방향이지만 결국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인연에서 이번 2인전이 마련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재삼과 이재효는 자신들의 고향에서 보고 자란 나무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대면했던 것 같다. 이들에게 나무란 존재는 단지 그림의 소재나 재료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나무를 생명체로 여기고 그것과 대화하고 그 내밀한 정신적 교류를 형상화하고자 한다. 물활론적 상상력을 지닌 범신론자들이자 주술사들이다. 그것은 나무를 매개로 해서 또 다른 차원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무를 통해 환기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방사한다.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에 끼어 고통 받는 존재다. 이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만 그 너머의 연관관계를 읽어내면서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보고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항상 가시적인 것을 심문하는 예술가다.
이재삼은 목탄으로 나무를 그린다. 작가는 겹쳐 그리는 독특한 방식에 의해 그만의 목탄의 깊이를 얻는다. 목탄은 나무를 태운 것이고 그 목탄으로 인해 나무는 다시 환생한다. 자연이 자연을 환생시키고 죽은 자연이 살아있는 자연을 흉내 낸다. 면 천에 목탄을 수없이 겹쳐 올리며 낸 먹 빛 같고 짙은 갓 색깔과도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우람하고 억세며 옹골찬 나무가 강렬하게 부감된다. 작가가 그린 그림은 대나무나 매화, 물이라는 대상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달빛, 음기를 가득 품고 있는 자연계의 비의적인 상황, 그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으로 자욱한 긴장의 순간의 시각화하려는 시도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느껴지는 비의적인 분위기, 묘한 '아우라'야말로 이재삼이 보는 한국의 풍경에서 풍기는 것이고 이 땅의 식물이고 나무고 물의 존재성에서 그가 보고 읽고 느낀 것이다. 이른바 한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기운이나 냄새, 느낌의 형상화다.
이재효는 자연의 나무를 일정한 형태로 자르고 집적시켜 놓았다. 나무 둥치, 말린 나뭇잎 등을 집적하여 커다란 볼륨을 형성하거나 나무에 못을 박아 넣은 후 휘어서 붙이고 탄화시키기도 한다. 구나 반구, 원기둥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세워진 나무들은 자연에 있는 나무이면서도 그와는 무척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작가란 존재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알고 있던 물질을 이렇게 낯설게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 장면이 흥미롭다. 나무란 대개 수직으로 직립하고 있는데 반해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이 나무는 대개 부드럽고 둥근 상태를 지향한다. 완벽함을 상징하는 원은 자연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보여주는 나무라는 존재를 본다. 나무에 대해, 자연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조각이란 또 무엇인가를 곰곰 되물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