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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서예가 현대 미술과 만난 곳은 -<글字, 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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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22.-2013.10.22. 서울 포스코미술관

전시의 유용한 기능은 무엇보다 미의 감상이다. 감상 외에도 보는 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는 일을 한다. 아울러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나 사고, 인식 등을 정리해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현대미술이 사회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데에는 다분히 이런 점도 고려될 것이다.


오세창(1864-1953) <정수(正受)> 1945년 종이에 먹 38x15cm 개인

     


A.R.펭크(1939-) 2001년 캔버스에 아크릴 100x200cm 개인 

전통적인 서예와 현대 미술의 극단적인 추상 세계는 외견상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은하수 멀리처럼 아득히 떨어져있을 것 같은 두 장르 사이에 가교를 놓아본 것이 이 전시이다. 서예와 현대추상미술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돌은 두 장르가 공통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율성, 일회성, 즉흥성의 대원칙이다.


황기로(1525-1575) <유상 시 송왕영(劉商 詩 送王永)> 종이에 먹 33.5x35cm 개인

 


샘 프랜시스(1923-1994) <심사(心事)> 1990년 캔버스에 유채 183183cm 국립현대미술관 

서예는 원래 무언가를 기록해 남기고 전하는 서사(書事)에서 비롯됐다. 오랜 동안 이런 기능의 시대를 거친 뒤 왕희지 때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때 평점이 바로 자율성과 즉흥성, 일회성이었다. ‘영화구년 세재계축 모춘지초(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로 시작되는 왕희지의 걸작 「난정서」는 본인조차도 이후에 여러 번 되풀이해 보았지만 당일과 같은 기세는 얻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을 정도 일필성, 즉흥성을 기본으로 한 명작이다.


안평대군 이용(1418-1453) 행서 <송엄상좌귀남서(送嚴上座歸南序)> 탁본 57x20.5cm 개인


피에르 술라주(1919-) 1885년 캔버스에 유채 225157cm(3EA) 국립현대미술관

  
이후 서예는 쓰는 사람의 인격과 교양과 직결된다는 문인(文人) 세계관에 접속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문인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예술로서 자율성 원칙이 더욱 폭넓어졌다. 과거 조선은 철두철미한 문인의 나라였다. 이 점에 비추어보면 조선에서 개성적이고 자율적인 글씨 명필가들이 즐비하게 배출된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 된다. 이 전시에는 조선을 통 털어 필획의 명가(名家)로 손꼽히는 안평대군, 황기로, 윤순, 허목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초서이든 해서이든 가히 자율 미학의 대가들이라 할 만하다.


조광진 <강산여화(江山如畵)> 탁본 28x197.5cm 개인(부분)


앙드레 마송 <목욕하는 여인> 1949년 캔버스에 유채 100x124cm 개인

즉흥성과 자율성과 같은 미학적 특징은 근대이후 회화독립의 길을 걸어온 서양 현대미술이 최종적으로 바라던 지향점이었다. 근대말기 초현실주의자들은 회화가 마치 자율신경 체계의 산물이듯 자동기술법을 주장했다. 이들이 바랐던 것은 그림 속에서 일체의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것을 걷어내는데 있었다. 그리고 바랐던 것은 즉흥적이면서 그 자체로서 자율적인 회화였다. 이른바 순수회화인데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양 서예 미학과 그 맥이 맞닿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접점이 바로 이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실제 전시에서 서양 현대미술의 소개도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마송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허목(1595-1682) <자아자(子牙子) 외> 종이에 먹 22.7x39cm 개인

 


루치오 폰타나(1899-1968) 1964년 캔버스에 워터프린트 33x24.2cm 개인

순수 회화라는 매력적인 주장은 알다시피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대대적 환영을 받으며 순수 추상의 길을 열었다. 폰타나, 술라주, 샘 프란시스, 리히터, 펭크 등은 자율성, 일회성, 즉흥성이란 미학적 기반 위에 각자의 개성에 따라 어느 때는 선으로 어느 때는 점으로 또 어느 때는 면으로 이를 실천한 주인공들이다.    


손재형(1903-1981) <갑진여의(甲辰如意)> 1964년 종이에 먹 63x26.5cm 개인
 


오수환(1946-) ㅡ<대화(MALEVICH)> 2013년 캔버스에 아크릴 127x125cm 개인

이 전시는 말 그대로 낡은 장지 위에 휘갈겨 쓴 몇 획의 의미 불통의 전통 서예가 현대 추상미술과 공통되는 미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는 기회이다. 전시 기획자는 서예의 경우 글 내용을 읽지 말라고 당부한다. 선이든 점이든 삐침이든 거기에만 열중하면 현대추상미술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돌에 자연히 올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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