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윤정원 개인전
장소 : 57갤러리
일정 : 9월7일 - 9월11일
윤정원의 그림 속에는 국화와 새(날개), 그리고 별이 등장한다. 이 모두는 허공에 떠 있거나 부양하고 있다. 별이야 저 먼 곳에 박혀있는 존재이고 새는 대지와 하늘 사이에 존재하지만 꽃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대지에서 이탈해 하늘로 상승해서 부유한다. 중력의 법칙과 대지의 모든 완강한 구속력을 지워버리고 홀연 꽃 한 송이가 새가 되고 별이 되어 부상하고 있는 장면연출이다. 국화와 새, 별은 모두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작가는 그 상징체계를 중첩하고 연결해서 모종의 이야기를 직조한다.
장지와 비단에 정교한 채색으로 그려진 도상들은 개별로, 혹은 중첩이나 이종의 변형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화꽃송이 사이로 새의 날개가 깃들어있는, 그래서 국화와 새가 한 몸으로 성형되거나 동물과 식물의 합성체가 등장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에서 동물성의 육체를 보거나 감촉하는 것이 작가들의 상상력이다. 한편 새의 날개를 단 꽃은 그로인해 허공으로, 하늘로 날아간다. 그것은 비상에의 욕망을 보여주는 환영이다. 마치 고구려고분벽화속의 인물들이 새의 날개를 단 것처럼 국화는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그리고는 별이 되고자 한다.
하늘에 박힌 국화꽃 별! 그런가하면 무지개 색을 지닌 별들은 스스로 발광(發光)하며 타버린 체 그을린 자국을 상처처럼 간직하며 떠 있다. 희망과 구원을 상징하는 별이 불에 데인 상처를 보여준다. 국화꽃 또한 심장과 하트의 형상을 만들다가 이내 갈라지는 심장, 흐르는 눈물이 되기도 한다. 희망과 상처, 꿈과 절망이 교차하는 형국이다. 유교적 이념에 입각한다면 국화는 인내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이다. 된서리에 뭇 꽃들 지고 없는 가을에 피는 인고의 꽃, 서리를 이겨내고 피는 강직함을 군자의 풍모라 칭송하였다. 또한 그 자액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특히 노란 국화를 으뜸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다른 색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대지의 색깔로서 음행오행에서는 중앙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곧 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꽃 중의 꽃이 되는 셈이다.
작가는 그 국화 한 송이를 커다랗게 화면 중앙에 위치시켰다. 단색의 모노톤으로 섬세하게 그려진 수많은 꽃잎들이 혀처럼, 촉수처럼 뒤척인다. 꽃대와 뿌리에서 분리되고 적출되었지만 저 꽃송이는 생명력으로 충만 해 있다. 상대적으로 광활한 여백은 그대로 허공이나 하늘이 되었다. 순간 국화는 새나 별이기도 하다. 그렇게 국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되기도 하고 또 다른 존재로 착시를 일으킨다. 이렇게 미술은 고정되고 확정된 형태를 지우고 그 안에서 상상해 낸 이미지, 연상되는 것들을 부단히 유출시키고 풀어놓는 일과 관련 된다.
윤정원, 별거울, 장지에 먹과 채색, 110x110, 2008
“하늘의 존재인 별과 땅의 존재인 꽃,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는 영물인 새에 의미를 담아 하늘을 동경하는 땅의 비상을 꿈꾸는 것, 이것이 나의 작업의 주 내용이다.” (작가노트)
국화는 군자의 상징에 머물지 않고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존재이자 가장 큰 자연인 하늘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 본인의 열망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국화나 새, 별은 결국 작가자신의 분신이기도 하고 또 다른 페르소나이다.
그림이란 이처럼 의미를 지닌 대상, 도상을 빌어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 구조 안에 조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정원은 하늘의 별, 새와 꽃이란 동양문화권에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도상을 통해 현재 자신의 삶과 연루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알다시피 현대미술이란 전통사회에서 기능 했던 주술적 이미지들, 그 도상체계와 서사담론이 붕괴되고 이미지가 이미지 자체로 파악되고 분석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윤정원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문화적 심층구조에 자리한 도상들을 길어 올려 개인적인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화면, 서사를 지닌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날개 달린 국화와 그을린 별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