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아름다운 궁중자수
기 간: 2013.6.25-2013.9.1
장 소: 國立古宮博物館
자수는 여성의 예술적 감각과 오랜 시간의 공력(功力)이 만들어낸 생활공예이다. 하지만 현대 여성들에게 색실과 바늘을 이용한 자수는 어머니 세대의 생활 문화로 추억의 한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여성들이 가정에서의 육아나 가사보다 남성과 동일한 공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에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수는 잊혀진지 오래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 왕실의 생활용품 가운데 수를 놓은 작품만을 다룬 것으로,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조선 여인의 빼어난 생활 예술을 조명하고 부각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전시된 자수용품의 화려한 색채감각과 한땀 한땀의 정성이 일구어낸 섬세한 조형세계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안복(眼福)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복온(福溫)공주 활옷의 뒷면, 1830년, 길이 130cm, 화장 92.5cm, 개인
복온공주 활옷 뒷면의 세부
차선면(遮面扇), 혼례용 부채, 조선, 길이 47cm, 동아대학교박물관
복온공주 자수 방석, 조선 86×97.4cm, 개인
복온공주 자수 방석의 세부
조선 왕실의 생활용품에 보이는 자수는 궁궐에서 사용했다는 의미에서 궁수(宮繡)라 하며, 사대부를 비롯한 백성들이 사용했던 것은 민수(民繡)라고 부른다. 특히 궁궐에서 쓰인 생활용품은 종류에 따라 그것을 다루는 장인이 별도로 있었으며, 자수는 침방(針房)이나 수방(繡房) 소속의 숙련된 내인(內人)이 담당하였다. 밑그림은 도화서 소속의 화원화가들이 그렸으며, 수본은 목판으로 새긴 것과 유지에 그린 것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봉황 흉배의 목판 수본, 조선, 19×17.4cm, 국립고궁박물관
봉황 흉배, 조선, 22×23cm,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궁중자수는 전문 인력이 최고의 재료와 도안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민수의 단순한 구성이나 문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오방의 고운 색실로 수를 놓은 다음 윤곽선을 금실이나 은실로 마무리한 것도 민간자수와는 차별화된 면모로 주목된다. 의복을 비롯해 방석, 침구류, 장신구, 부채, 병풍 등에 보이는 자수의 문양은 도안화된 패턴부터 회화성이 짙은 것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장수나 복록, 평안 등의 길상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한땀 한땀의 자수는 어쩌면 여성의 구도자적(求道者的) 행위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순정효(純貞孝)황후 자수 베갯모, 20세기 초, 지름 10cm,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두루주머니, 20세기 초, 8×10.7cm, 국립고궁박물관(순정효황후가 영친왕비에게 하사
수서각(繡犀角) 향노리개, 조선, 길이 37cm, 국립고궁박물관
특히 끝부분에 위치한 대형의 <송학도>와 <매화도> 10폭 병풍은 평양 출신의 서화가 양기훈(楊基薰, 1843-1919 이후)의 그림을 수본으로 한 것인데, 꼬임이 있는 굵은 수실이 만들어낸 시원스런 느낌과 속을 메워 입체감을 나타낸 속수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유행했던 자수기법으로 현대적인 미감이 돋보이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자수 매화도 병풍, 1906년, 각각 194×34cm, 국립고궁박물관(양기훈이 고종에게 바친 그림을 자수로 만든 병풍)
자수 매화도 병풍의 세부
이러한 궁중자수의 전통과 조직은 일본에 의해 국권이 찬탈되면서 안타깝게도 강제로 단절되었다. 이때 궁궐에서 수를 놓던 여인들이 민간으로 흩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궁중자수의 일부가 전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근대 여성교육에서 자수가 현모양처의 미덕으로 인식되면서 우리나라의 전통 자수는 일본이나 중국의 것과 뒤섞이며 고유의 기법과 미감을 잃어갔을 뿐만 아니라 느림의 미학은 현대 사회와 상충되면서 존재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은 규모이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수’라는 생활공예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느림의 미학이 빚어낸 생활의 멋과 아름다움은 현대 사회의 무한 속도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와 편안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