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김항진 '혼용과 오브제'展
기간 : 6월 14일~8월15일
장소 : 마가미술관 제1전시실
모든 이미지의 시작은 아마 돌로부터 기인하는 것 같다. 인간의 눈에 들어온 돌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조형물이었다. 돌은 엄청난 크기의 산이 잘게 쪼개진 것이고 어마어마한 생애를 살아온 마지막 자취를 상처처럼 안기는 오브제다. 사람들은 그 돌의 피부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면서 온갖 이미지를 상상해냈고 그 돌 안에 잠겨있는 모종의 형체를 밖으로 끌어내고자 했다. 돌은 최초의 조형적 재료이고 미적 오브제이자 상상과 유희를 가능하게 해준 선물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영원과 불멸을 약속하는 재료이기도 했다. 돌의 피부에 이미지를 새기고 돌 자체를 하나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미술의 역사, 조각의 역사도 서술되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돌은 조각 작업에 있어 아니 모든 조형작업에서 매력적인 재료로 다루어진다.
김항진(마가미술관, -8.15)은 자연석을 수거하고 이를 일정한 규격으로 자르고 다시 이어붙이고 집적시키면서 특정한 형상을 모방하고 재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돌이면서 이미지이고 이미지이자 돌 자체인 그 사이에서 생존한다. 돌과 이미지,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동시에 그 모두를 껴안고 있는 조각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근한 존재의 피부에 기생해나가면서 익숙한 볼거리를 안겨주지만 정작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수많은 돌이기도 하다. 돌담이나 돌로 이루어진 벽면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잘한 돌멩이들이 잔뜩 집결된 상황성이기도 하다. 그는 비교적 균질한 크기의 돌 조각들을 잇대어나가고 다듬어서 사람의 모습이나 손가락 혹은 기묘한 형상을 재현했다. 김항진은 대리석이나 매끈한 표면과 화사한 색상을 지닌 돌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급한 조각적 재료인 돌로부터 벗어나있다. 그가 사용하는 돌은 흔한 돌이고 잡석이고 자연석이다. 그는 돌을 보고 다시 일상의 사물들을 본다. 돌과 그 사물의 형상이 맞물려 돌아간다. 아니 그 둘은 모종의 관계 속에서 조우한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응시의 세례 속에서 바라보고 건져 올려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아마도 그는 단 한순간도 작가로서의 긴장된 시선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조각이란 조각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고 조각으로 질문하는 이들이다. 돌과 일상의 오브제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특히 불상의 수인을 확대한 조각이 대지에 직립하고 있는 작품이 눈에 띈다. 손가락(수인)은 그냥 그렇게 머물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을 거듭 자극하면서 환생한다. 불상의 한 편린이 독립되어 나무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사실주의적이거나 환영을 극대화하는 조각이 아니다. 그와 유사하기는 하나 결코 닮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질적인 존재들끼리의 느닷없는 초현실주의적인 만남, 결합 그리고 상대적인 크기의 위상변화가 초래하는 낯설음이 그의 전략이다. 이 ‘환영과 허구’의 조각은 또 다른 맥락에서 우리들의 보는 방법, 시선에 대해 사유케 한다. 물리적 물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상상에 의한 사물인식간의 거리를 생각게 한다. 망막적 시각에서 벗어난 어떤 시각적 해방이 그의 숨겨진 의도 같다는 얘기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친숙한 일상 사물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고 이를 미술 문맥 속에서 그것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방식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