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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직임에 시원함이 있고, 머무름에 아름다움이 있다 - <5색色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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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5색色 바람이 분다
기 간 : 2013.7.26 - 2013.11.3
장 소 : 경기도박물관

한 여름에는 코 끝 시렸던 겨울이, 한 겨울에는 팥빙수 한 그릇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던 여름이 그리운건 지난 계절을 열심히 보냈다는 증거이다. 이번 여름도 열심히 보내고 있는 탓인지 무덥고도 무덥다. 그래도 이렇게 더워야 여름 아니겠는가. 덕분에 달콤한 여행이나 휴가를 기다리는 재미로 반년을 보냈으니 말이다.

선풍기 없인,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은데 부채마저 없던 시절 옛 사람들의 여름은 어떠했을까?.. 가가호호 석빙고가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음식이 쉬는 것은 물론이요 이 더위를 어찌 식혔을까 싶다. 다만 냇가에서 탁족을 즐기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열대야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서늘한 밤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했을 듯하다.



그 시대의 상쾌한 바람은 느껴볼 수없으나 옛 사람들의 여름을 책임졌던 부채를 볼 수있는 전시가 경기도박물관에서 진행중이다. 부채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권력의 상징의 기능을 가졌던 부채를 소개하는 ‘옛 바람’, 국왕이 단옷날 대신들에게 내린 단오선(端午扇)등을 소개하는 ‘어진바람’, 미술품역할도 지닌 사대부들의 부채를 소개하는 ‘맑은바람’, 백설들이 사용한 실용적인 부채는 ‘아름다운 바람’, 현대에 재해석된 부채는 ‘새로운 바람’ 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부채의 다양함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공작깃털부채, 20세기, 국립민속박물관



<부채를 든 장만>, 17세기, 경기도박물관

부채는 크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과 자루가 달린 단선으로 나뉘는데, 흔히 종이로 만들어진 부채를 접해봤기에 제일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종이와 비단이 없던 고대에는 식물과 깃털이 부채의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한시대 부채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부채도 모두 깃털 부채였으며 후백제의 왕 견훤이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로 보낸 기록도 있다고 하니 부채가 실용적인 기능외에 권력 상징의 기능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합죽선, 18세기, 경기도박물관
단오날 왕이 대신들에게 하사한 40수 부채


기린을 수놓은 둥근 부채, 18세기, 청곡부채전시관

파도 위에 있는 상상의 동물 기린麒麟을 노란색 비단실로 수놓은 부채이다. 궁중무당이 사용했던 것으로 전한다.

 


하선장 (下膳狀)국왕의 선물 목록


정조가 채제공에게 선물한 선추

 

조선시대 국왕은 대신들에게 부채를 내려 국왕의 덕치를 대신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정조가 채제공에게 선물한 부채와 부채 장식인 향선추가 전시되어 있는데, 다산 정약용은 "지난날 단오날에 선방(扇房)에서 은혜의 부채를 내리셨네. 궁궐에서 새로 만든 것이기에 긴 여름도 그것 때문에 시원했지"라며 정조에게 받은 부채에 대해 글로 남기기도 했다. 정조가 하사한 부채는 “오로지 어진 바람을 일으켜 모든 백성들을 위로하리라”는 중국고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대나무를 그린 선면화, 18세기, 청곡부채전시관

중국 송나라 때 한 문인은 고려의 부채를 보고 “고려에서 오는 사신들은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를 사용하는데 산수, 화조, 인물 등을 그려 매우 아름답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멋을 낸 고려선을 두고 한 말인데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선면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대부의 손에서 부채는 휴대용 미술품이라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백성들이 사용한 단선은 기능적 측면이 강조되었는데, 더위를 쫓는 것을 기본으로 혼례나 제례에서 의례용·장식용으로, 외출 시에 얼굴 가림이나 비를 막는 용도로, 벌레를 쫓거나 불을 피우는 것을 비롯하여 판소리에서는 긴장감과 흥을 고조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대나무 껍질을 엮어 만든 부채, 19세기, 청곡부채전시관

 


쌍학을 그린 무당부채, 19세기, 청곡부채전시관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황해도 농부들이 풀잎을 짜서 만든 둥근 부채를 '맑은 바람을 일으키는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게 하는 덕', '값이 저렴한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볕을 가리는 덕', '옹기를 덮는 덕' 이라며 '팔덕선(八德扇)'으로 소개했는데 백성들이 사용한 부채를 통해 팔덕선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한승민, <행복무대의 축배>, 2010년

마지막으로는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인해 기능이 후퇴된 부채가 예술품으로 재탄생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적 측면이 강조되어 재탄생된 작품은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기능과 아름다움, 다양성은 앞으로도 예술분야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여름이라는 계절의 변화를 느꼈을 선조들과는 달리 현대인들은 여름을 즐기기 보다는 더위를 피하느라 바쁜 건 아닌지 싶다. 전력난이 최악이라는데 가끔은 부채로 이는 바람을 즐기며 팔덕(八德)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터. 바람이 분다는 이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부채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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