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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사람을 그리다 - <역사 속에 살다 : 초상, 시대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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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완(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

전시명 : <역사 속에 살다 – 초상, 시대의 거울>
기 간 : 2013.7.19 - 2013.9.8
장 소 : 전북도립미술관

우리는 글로 남겨진 역사를 통해서 사건들의 결과를 읽는다. 그러나 다큐나 사극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결과를 이끌어낸 인물들이 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왜 그런 고민을 했는지 그 과정을 상상하고 추론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초상화는 바로 그 역할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시각적 장치들이다.

이번 특별전은 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전통, 기억하고 기록하다”는 초상화의 원래의 기능을 대변하는 것이다. ‘공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후세에 배우게 한다는 개념이지만, 그 이면에는 훌륭한 사람은 곧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훌륭한 일을 해야한다는 개념을 화가는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인물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상은 얼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덮고 있다. 


작가미상 <이숭원초상> 종이에 채색 175x90cm 조선시대 연안이씨 종중문적박물관 소장


두 번째 주제인 “변혁, 근대의 초상”에서 기획자는 다양한 형태의 변혁을 이야기해준다. 기법상의 변혁, 그림 속 주인공의 신분변화, 화가 자신의 인식변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채용신의 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진을 적극 활용할 줄 알았던 작가이자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초상 그림이 중심이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느꼈던 ‘힘’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한다. 마치 스튜디오를 꾸며놓듯이 일관된 소품을 배열하고, 서명마저도 배경의 병풍에 쓰여진 서명처럼 처리하는 것은 작가와 그림 속 주인공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시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 아닐까 느껴진다. 더불어 네 번째 전시실의 영정과 함께 여기에 걸린 두 점의 이순신 장군 영정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이상범의 작품은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서명에 ‘단기’를 몰래 적어넣은 사실을 통해 그가 의도적으로 저항적 이순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음을 깨닫게 한다. 이어 김은호, 장우성과 같은 당대의 거장들에 의해 창조된 이순신의 이미지를 차례로 읽어나갈 수 있다. 그 외 이번 전시포스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김은호의 <이준공초상>은 왕족으로서가 아니라, 파란 속에 살다간 한 남자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다가온다. 더불어 잘 알려진 정현웅, 문신, 이종우와 같은 일제강점기 유화작가들의 초상화와 자화상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김은호 <이순신장군초상화> 비단에 채색 210x115cm 19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은호 <이준공인물상> 한지에 수묵초본 127x62cm 191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세 번째 주제는 “초상, 시대를 말하다”인데, 여기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다. 말하자면 현대판 어진인 셈이다. 조선시대의 어진은 당연히 최고의 화사에 의해, 최고의 수준으로 제작된 그림으로서 믿어지며 경외심으로 대하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 초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아직도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고, 우리들의 지금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초상화들을 순수하게 예술작품으로 대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매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주제는 매우 도발적이고 신선하다. 이들 화가들은 정치적인 관계를 떠나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화가인가? 대통령의 정치적 평가와 초상화의 예술적 평가는 연관이 있을까?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그림 속에도 반영되어 있는가? 


정형모 <고 박정희대통령 초상화> 캔버스에 유채 215x151cm 197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네 번째 “소환, 과거에서 영원으로”는 역사적으로 잊혀져가는 인물들에 대한 의도적인 부활의 이야기이다. 표준영정 개념은 당나라 염립본(閻立本, 601~673)의 <역대제왕도권(歷代帝王圖卷)>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오랜 전통을 지닌 제작방식이다. 오랜 세월로 인해 잊혀졌던 이들 인물들은 다양한 의도로 그림을 통해 부활한다. 주로 사당과 기념관에 걸리기 위한 이들 영정들은 그림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을 이 시대로 불러올 수 있는 힘을 아직까지 믿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함께 전시된 작품들은 비록 오래전 인물들은 아니었지만,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잊혀져 가는 다양한 군상을 불러들인다. 레핀대학의 변월룡이 그린 김용준·리기영 초상도 요즘 재해석되고 있는 이들 인물들을 이념 속에서 끄집어내어 우리 곁으로 소환시킨다.


장우성 <충무공 이순신> 비단에 채색 170x86cm 1962 충렬사 소장


마지막 주제 “현존, 역사 속에 살다”는 그야말로 원로·중견·신진 작가들의 초상화 향연이다. 더 이상 과거를 불러오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의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에 대한 제시를 통해 이 시대를 역사로 만드는 작업이다. 더 이상 영웅은 없다. 주체적인 주인공이 있을 따름이다. 그가 누구든 그림 속의 인물은 주인공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미화’, 아니 ‘미술화’ 된다. 이 전시실이 현대 초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정원철 <대석리사람들 06, 05> 종이에 목판 각 160x120cm 1995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이번 전시에는 그려진 인물의 평가만큼이나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낸 초상화들이 모여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초상화란 바로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라는 사실이다.

글 주수완(고려대학교)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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