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성정원 'Can you hear me?' 전
장소 : 갤러리룩스
기간 : 2013.7.10-19
성정원,can you hear me,2013,가변설치
성정원은 디지털프린트 된 모르스 부호를 벽면에 가설하고 천장에는 컵을 뒤집어서 매달았다. 그것은 마치 갓을 쓴 알전구처럼 늘어져있다. 벽면에는 그림을 그리고(벽에 부착한 프린트) 종이컵은 바닥을 향해 내려져있다. 컵의 내부, 바닥은 하나의 점이고 원이다. 아랫면보다 넓고 큰 컵의 윗면(원형)을 귀에 갖다 대면 모르스 부호음이 울린다. 점(원)과 선(직선, 사각형)으로 모든 것을 환원한 모습은 그대로 모더니즘의 조형언어이기도 하다.
성정원,can you hear me,2013,가변설치
성정원은 그 모르스 부호를 벽면에 횡으로 부착하는 한편 그 소리를 컵을 통해 은밀하게 들려주는 공간을 가설했다.벽에 그려진 그림(벽화)과 일상용 오브제인 컵, 그리고 소리가 모두 모여 있다. 회화와 조각, 음향이 어우러진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향으로 들리는 소리가 이미지화되는 순간 특정한 의미체계를 지닌 문자가 된다. 이미지가 문자로 탈바꿈하고 변이를 일으킨다. 그 이미지는 점과 선으로만 형성되었고 점과 선의 교차와 배열의 변수들이 모여 가장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소통기호, 그림을 만들어준다. 전시장의 흰 벽을 배경으로 점과 선들이 벽에 일렬로 배열되어 퍼져나간다. 마치 소리가 울리듯이, 파장을 일으키듯이 이어진다. 수묵으로 그려진 점이자 선이다. 그것이 그친 자리에 작게 쓰여진 문장이 그 모르스 부호가 무슨 뜻인지를 지시한다. “조용히 해주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등의 문장이다. 어딘지 간절하고 슬프고 아련하다. 벽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걸려있는 종이컵을 집어 들고 귀에 갖다 대면 그 모르스 부호음이 들린다. 컵은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증폭시켜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중시킨다. 물을 담아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이 순간 미지의 신호음을 발산하고 아득한 시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면서 청자의 귀를 독점한다. 오로지 컵과 그 컵에 귀를 맡긴 누군가의 고막만이 독대하는 순간이다.
컵의 윗부분은 온전히 귀를 감싸고 그 귀를 소리에 집중시킨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그 컵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개인의 몸이 컵에 담긴 형국이다. 청자는 단순한 신호음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 미지의 신호음이 발산하는 의미체계를 막연하게 추측할 것이고 그러다 문득 벽면에 쓰여져 있는 문자를 보면서 비로소 모르스부호음이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제는 잊혀지고 사라지는 모르스부호라는 소통의 체계를 끌어들여 아득한 먼 곳의 누군가와 전기신호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려 했던 당시의 간절한 욕망을 문득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살며 살기위해서 무수한 소통은 또한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 매순간 그 소통의 불통과 불확실성에 대해, 그리고 소통의 좌절에 따른 절망감과 오독에 대해 상처를 받거나 곤혹스러워한다. 인간과 인간이 이룬 문자와 다양한 기호체계들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소통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며 그것을 갖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또한 그것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의 횡행과 폭력성에 시달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좀 더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더불어 진실된 말과 소통 가능한 언어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말이 왜곡되고 일방적인 소통이 강제되는 시대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통’인 셈이다. 성정원의 이 매력적인 설치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소통의 진정성과 그 간절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문득 내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컵 안에 마치 태아처럼 잠기는 꿈을 꾼다. 양수 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내부와 그 밖의 세계에 귀 기울이며 웅크려있던 그 시절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