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명작으로 만난 근세와 근대의 거장들-근대미술명품전 Ⅳ
기 간: 2013.6.12 - 2013.6.25
장 소: 서울 가람화랑
기술 발달로 복제품이 진품 이상으로 리얼해진 시대가 됐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정교한 사진술이 복제해주니 진품의 가치가 시들하게 보일 수도 있다. 루브르 같은 곳에서 모나리자 앞으로 달려가 사진 한 장 덜렁 찍고 그림 감상은 도록 속 사진으로 대신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복제를 보다 보면 ‘진품은’ 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이 때가 중요한데 바로 이 시점부터 차원이 다른 미술 감상의 길에 들어선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사진 복제를 통해서 알려져 온 ‘명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물론 미공개작도 몇몇 포함돼 있다)
특히 모던 시대를 살았던 유명작가-김환기, 박수근, 장욱진-를 그 앞의 시대 즉 18세기 명수-정선, 심사정, 김홍도와 나란히 놓은 것도 색다른 기획의 특징이랄 수 있다. 일반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명품을 간단히 소개한다.
정선 <聚屛巖圖> 지본수묵 37x56cm
취병암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는 뜻으로 금강산을 비롯해 이 같은 지명을 가진 곳이 전국에 몇 있다. 겸재(謙齋, 정선의 호, 1676-1759)가 그린 취병암은 인왕산 자락 밑을 가리킨다.
이 그림은 한국전통회화의 바이블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국회화대관』에 사진이 수록돼 있지만 일반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전설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왕산 자락의 너른 바위를 검은 먹으로 북북 그어 처리하고 무성한 나무숲 역시 옅은 먹물 위에 짙은 선과 점으로 처리해 안개에 젖은 듯한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겸재 만년의 대표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정선 <雪景> 지본담채 24.5x30cm
옛 그림에서 눈 오는 풍경은 그리 많지 않다. 눈 덮인 대지를 희게 남겨 두고 그 나머지, 대개 하늘을 옅은 먹으로 칠하는 네거티브 방식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평생 다작의 작가였던 겸재이지만 설경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작품은 눈 덮인 계곡 속의 산사를 찾아가는 처사와 동자를 그렸다. 방한모를 뒤집어쓴 모습이 정교한 것도 그렇지만 연분홍 물감으로 얼굴과 손을 살짝 칠해 포인트를 준 것 역시 겸재다운 필치이다. 오른쪽의 拜觀記는 필자 미상이지만 마지막에 <蕭寺暮雪>이라고 쓴 것은 그대로 제목이 될 만하다. 소사는 절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산사의 저녁에 내린 눈’ 정도가 된다.
심사정 <山水> 1764년 지본담채 29x41cm
沈師正(호는 현재(玄齋), 1707-1769)이 58살 때 그린 그림이다. 앞에 바위산이 놓여있고 멀리 높은 산의 연봉들이 늘어서 있는 사이로 돛단배가 떠 있는 강과 나무숲으로 둘러 싸인 마을이 보인다. 현재가 그린 그림 가운데 한양의 어느 실경을 남종 산수화식으로 그린 것이 전하는데 이 그림 역시 한강 하류일대의 어느 실경을 대상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맑고 깨끗한 느낌이 뛰어난 현재 산수의 秀作이다.
심사정 <花鳥> 선면 지본담채 29.3x61.5cm
현재의 특기중 하나는 화려한 색감이 뛰어난 화조화이다. 큰 바위 사이로 가을 국화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잎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지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덤불 사이로 무엇인가를 발견한 눈치로 그려져 있다. 현재는 시정이 넘치는 화조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의외로 그림 속에 시구를 적어 놓은 경우는 드물다. 여기에는 유려한 필치로 명나라초의 유명한 시인인 고계(高啓, 1336-1374)의 시 「제손암묵국(題遜庵墨菊, 손암이 그린 묵국도를 보고 짓다)」의 3, 4구가 적혀 있다. 손암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현재는 원시의 수신(須信)을 자종(自從)이라고 썼다. 그래도 뜻은 대강 통한다.
獨留鐵面傲霜遲 독류철면오상지
秋蝶來尋莫自疑 추접래심막자의
須信陶令醉歸後 수신도령취귀후
西風塵土滿東籬 서풍진토만동리
찬 서리 더딘데 홀로 남은 붉은 꽃
가을 나비 의심 없이 찾아오지만
도연명 취해 돌아간 뒤로는
서풍의 흙먼지 동리 아래 가득하리니
김홍도 <比丘尼> 지본담채 27x19cm
김홍도(1745-1806)은 평소 불심이 돈독했던 것으로 전한다. 48살에 본 외아들 김양기는 연풍현감 시절 인근의 상암사(上庵寺)에 시주를 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후기의 그림에는 승려와 보살, 부처를 그림들이 다수 전하고 있다. <비구니>를 그린 이 그림 역시 후기의 것으로 ‘檀園’이란 낙관은 중년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고깔을 쓰고 염주와 종을 흔드는 것을 보면 혜원 그림에서처럼 길가에서 시주를 청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도장은 ‘弘道’와 ‘士能’이다.
장욱진 <眞眞妙> 1970년 캔버스 유채 24x33cm
근세 작품은 아니지만 ‘근대 명품’의 반열에 올라있는 작품이 이것이다. 장욱진은 약 반년 남짓한 취직 생활(국립중앙박물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의 일생동안 정규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술과 그림 그리고 사람들에 파묻혀 살았는데 생활은 서점을 꾸려가는 부인 몫이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불심이 매우 깊은 그녀를 지켜보며 어느 날 불현 듯 그린 그림이 ‘참으로 참으로 묘하다’라는 제목의 이 그림이다. 진진묘(眞眞妙)는 그녀의 법명이기도 하다. 장욱진이 근대 전설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 그림도 함께 승천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 소장의 실물이 다시 소개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