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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전시, 큰 울음-<소전 손재형>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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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제목: 소전 손재형전 기간: 2013.4.18 - 2013.6.16 장소: 서울 성북구립미술관

 

 

20세기 한국의 근현대 100년은 박탈이고 상실의 시대다. 그 이유는 식민지와 서구화에 있다. 하지만 내 것을 스스로 버린 것은 일본이나 미국이 나를 진정 몰라준 것보다 더 큰 상실감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붓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톨이이고 홀로라는 생각이 더 깊어만 진다.


<승설암도(勝雪盦圖> 1945년 23x32cm 개인
당시 종로에서 백양당 서점을 하던 인곡 배정국의 집에서 모인 모임을
소전이 즉석에서 그린 그림. 이날 주인과 소전 이외에 이태준, 김환기, 조중현 등이 모였다.




<공검지기(恭儉持己)> 1954년 31x118cm 소전미술관

 



그 여파는 당장 식민지 조선에 불어 닥쳤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마저 書는 1932년 10회때부터 삭제되었다. 조선예술의 장자방을 자처한 書는 신식학교에서 발조차 들여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정규교육에서 밀려난 서는 공모전과 서숙(書塾)을 아지트로 근 100년간 목숨을 부지하였다.





<화의통선(畵意通禪)> 1959년 33x130cm 개인

서울대 강의를 나가면서 알게 된 청년 서세옥에게 써준 글이다.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 - 1981)은 생애가 말을 해 주듯 개화기 일제강점기 분단과 6.25 산업화를 書로 관통한 사람이다. 소전의 書이력이 20세기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선전(鮮展)’을 통해 소전이 서가(書家)로 태어났다면 소전은‘국전’을 만들어 서를 다시 소생시켰고 영욕의 30년을 건사시켰다. 사실 오늘날 붓을 쥐고 행세하고 있다는 사람은 모두 음으로 양으로 소전의 덕을 안본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창청공(詩窓淸供)> 1954년 33.5x63cm 개인

소전은 글씨와 가까운 사군자는 물론 본격적인 그림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졌다




소전의 서는 그의 일생이 그러하듯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특징 지워진다. 한글과 한자는 물론 문인화, 전각까지 넘나들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가 53세가 되는 1955년(을미년) 전후 효자동 자택은 그 용광로인 셈이었다.



<무량정정(無量情靜)> 1970년 130x30cm 소전미술관    <사능지족(事能知足)> 1970년 129x33cm 소전미술관



요즘말로 하면 융복합 컨셉으로 대놓고 작품을 즐겨한 사람이 소전이었다. 특히 전서의 필획으로 한글 고체(古體)는 물론 행초까지 마구잡이가 아닌 종횡무진으로 해낸 지점은 서예언어로 20세기를 말한다면 바로 이 지점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한다. 이 시기 소전의 대표작중의 하나는 <해내․ 천애>이다. 



海內存知己 세상 곳곳마다 나를 알아주는 이를 두었다면

天涯若比隣 천하 모두 이웃과 다름없을 텐데.




<해내천애(海內天涯> 1955년 64x192cm 개인



6.25전쟁이 막 끝난 나라사정과 소전의 심사가 묘하게 오버 랩되면서 27세에 요절한 당나라 왕발(王勃)의 한탄이 소전의 붓끝에서는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엉엉 울음 울고 있다. 물론 비첩(碑帖) 혼융하면 자신의 당호를 ‘존추사실(尊秋史室)’로 정할 정도로 신앙한 추(秋)사(史) 김정희(金正喜,1786 -1856)다. 하지만 소전은 추사의 껍질을 그냥 박아내지 않았다.




소전이 쓴『시정신(詩精神)』제3호와 『현대문학(現代文學)』창간호의 제자(題字)

그림은 각각 유경채와 김환기가 그렸다.



 

추사체의 근원을 거슬러 가면 예서 중에서도 서한(西漢) 예서를 만난다. 소전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전서를 불러내어 무자비하게 조형을 주무르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창조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근원은 고전이다. 창조와 고전은 결국 한 몸인 셈이다.‘소전체(素筌體)’는 울분과 비통의 오늘을 태고로 버물여 붓으로 토해낸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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