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영택(미술평론가)
전시명: 성영록展 장소: 그림손갤러리 기간: 2013.4.17-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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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록은 바다(물)를 배경으로 한 풍경을 잔잔하게 안긴다.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을 사뭇 감상적으로 부추키는 화면의 하단에는 매화나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물리적인 화면의 모서리, 가장자리에서 그림의 중심으로 밀고 들어오는 매화나무/그림은 원경으로 자리한 풍경과 동떨어진 단호한 자태로 강렬한 존재감을 지시한다. 그것은 순간 그림의 중심적 이미지가 되었고 상징적 존재를 은유한다. 마치 이 쓸쓸하고 호젓한 자연 앞에 독대하는 인간이나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 혹은 자연과 상호연관성을 갖는 모종의 존재로 다가온다.
그림이란 결국 작가 자신의 감각을 구현하는 일이다. 이때 감각은 결국 그의 세계관, 존재관으로 수렴된다. 미술은 그것 없이는 단 한줌의 성과도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성영록은 산수화나 사군자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분명 산수화와 사군자의 세계를 응용해서 이를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내고 있다. 성영록의 그림이 전통의 현대화나 정체성과 같은 다소 무거운 담론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은 무척 감성적인 그림이다.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고 그 감정의 공유를 파장으로 만들어놓는 그림이다. 이 깔끔하고 미니멀하며 감각적인 색채로 고요하게 적셔진 화면(간결하고 감각적인 설채가 흡사 일본의 우끼요에를 연상시켜주기도 한다.)을 보노라면 이 풍경 앞에 자리한 나라는 고독한 인간을 경험하게 된다. 아니 나의 자리를 대신해 매화나무가 의인화된다. 다만 그러한 장치가 다소 신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잘한 금박이 박힌 냉금지를 사용하고 그 종이 안으로 엷은 채색물감을 몇 겹으로 밀어 넣는다. 습해진 종이는 물기를 머금고 근경에서 원경으로 색층의 차이를 통해 아스라이 멀어지는 바닷물과 섬의 모습을 환각처럼 슬쩍 안겨준다. 수평의 띠들이 바닷물의 주름, 물결을 암시하고 냉금지에 박힌 금박의 편린들이 백사장의 금빛모래나 빗방울, 눈송이가 되어 흩어진다. 수직으로 내려 그은 선들은 낙하하는 빗줄기일 것이다. 어니 그러한 자연의 상황을 연상시켜준다. 이 그림은 인적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과 매화만이 남겨진 빈 풍경이자 어느 먼 바닷가에서 바라다 본 매혹적인 허구의 풍경이다. 이 풍경은 작가에 의해 상상되어진 이상적인 풍경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시점에서 바라다본 풍경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풍경을 보는 이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유토피아는 산수화가 그랬듯이 인간의 생의 조건인 자연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황홀하게 안겨준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들은 저 자연 속을 와유하고 기거하고자 하는 꿈을 꾼다. 작가의 고백처럼 그는 사람들에게 매화를 선사하고 그 또한 매화와 같은 이가 되고자 한다. 그러니 이 그림은 여전히 사군자의 맥락에서 호흡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