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절대미를 꿈꾸다: 목불 장운상의 예술세계
장 소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기 간 : 2013.4.17~6.23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전경
장운상(張雲祥 1926-1982)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배출된 제1회 졸업생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기반을 마련한 해방 1세대 작가이다. 특히 소재와 재료, 화법 등에서 스승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일본색을 청산하고 민족적인 미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수묵채색 미인도를 통해 선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왜냐하면 미인화는 소재와 표현기법 등에 있어서 일제감정기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일본화(日本畵)에 가장 많이 노출된 장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70년대의 해방 1세대 화가들은 대개 사의적(寫意的) 수묵화나 서양의 영향을 받은 추상 회화 등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도 1. 장운상, <9월> 1956년, 종이에 담채, 200×150cm, 국립현대미술관
하지만 장운상은 화선지와 수묵채색이라는 전통 재료를 고집하며 인물 중에서도 여성의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아름다움, 즉 美의 가치를 완성하는데 천착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 중반 이후, 여성의 누드를 소재로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통적인 미인도류도 다수 제작하였다. 일례로 1956년 제5회 국전에 무감사로 출품했던 <9월>(도 1)은 상반신 누드 여성의 파격적인 자세와 표현기법에서 새로운 조형적 모색을 보여준다. 반면 한복 차림의 여성이 양장을 입은 여성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 <미인도>(도 2)는 조심스러운 몸가짐에서 보이는 보수성과 목이나 양쪽 팔을 드러낸 옷차림에서 풍기는 개방적 성향이 대조를 이루며, 1960년대 중반 완성되는 한복 차림의 고전적 미인도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추구하는 장운상의 조형세계를 예고하고 있다.
도 2. 장운상, <미인도>, 1956년, 비단에 채색, 79.5×82.5cm, 국립현대미술관
그가 한국 현대 미인화의 전형을 모색하던 1960-70년대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의식주 문화가 빠르게 서구화되어 갔던 시기이다. 이로 인해 유교적 관습도 약화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점차 늘어났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며 즐기는 여성들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장운상이 확립한 한복 차림의 현대 미인도는 고전미를 지닌다는 점에서는 신윤복(申潤福 1758-?)이나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뒤를 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의 여성상과 그만의 絶對美가 반영되며 차별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도 3. 장운상, <운(韻)>, 1977년, 종이에 담채, 150×178cm, 개인
특히 여성의 얼굴을 보면 쪽진 머리에 의해 드러난 시원한 이미, 사선으로 처리된 긴 눈매, 반듯한 콧날의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은근한 미소 등이 어우러지며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꽃을 감상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순간을 당당하게 즐기는 자족감(自足感)과 생동감(生動感)이 넘친다. 이러한 특징적 얼굴 표현은 장운상이 추구한 절대적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현대 여성의 익명성과 공중화를 의미하는 상징적 도상이기도 하다. 더불어 민무늬의 반회장 한복은 평범한 현대 여성의 정숙함이나 우아함을 대변하는 코드로 작용한다(도 3). 그러나 기존의 미인도와 다르게 팔등신에 가까운 서구식 신체비례나 손동작의 자세한 묘사는 그가 받았던 대학의 미술교육에 뿌리를 둔 것이다. 결국 장운상은 전통적인 미인도에 당시의 현대적 여성상과 미술교육을 통해 습득한 화법을 절충하여 한국 현대 미인화의 전형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미인도는 악기를 연주하고, 꽃을 감상하고, 부채를 든 여인의 모습에서 익명의 현대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는 여유와 즐거움을 소리 없이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미인화의 한 전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해방 1세대 화가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도 일깨우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