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영택(미술평론가)
전시명: 임명희展 장소: 인사아트센터 기간: 2013.3.27-4.7 |
임명희, 검프린팅기법, 60x40cm,2013 |
자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예술형태의 하나다. 바늘과 실을 이용해서 천위에 시술하는 이 행위는 본래의 천 바탕에 문양과 색채를 통해 주술과 기복, 상징과 권위, 기호 및 심미적이며 장식적인 측면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후기구석기 시대인들이 조개나 아플리케장식, 대마실을 이용하여 원시자수 문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자수의 발전은 양잠업과 견직물, 염색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자수는 무엇보다 복식문화와 연관되어 있고 그 복식은 단지 옷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 옷의 색채와 문양은 신분의 기호이자 주술과 기복적 욕망의 도상으로 촘촘하다.
더불어 자수는 이미지를 그려 넣는 일이자 그것의 요철효과로 인해 부드러운 천위에 촉각적 부조가 되기도 한다. 그림과 조각, 평면과 저부조 사이에드리워져 있다. 생각해보면 옷은 견물로 되어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옷에 수놓은 자수와 함께 소멸된다. 더구나 오래된 옷은 그 옷의 주인을, 그러나 지금은 부재하는 육신을 떠올려주는 텅 빈 기호와도 같다. 애잔한 감상과 향수, 애도의 감정을 마냥 건드려주는 매개인 것이다.
임명희는 할머니가 남겨놓은 봉황문양의 자수를 비롯해 한국의 전통적인 자수를 수집했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했다. 한국인의 삶에서 자수는 옷과 이불, 베게 끝부분(베겟모), 수저집이나 지갑 등에 시술되었다. 물론 궁중자수와 민속자수는 차이가 나는 편인데 보편적으로 한국의 전통 자수는 검소와 검약을 내세웠던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절제된 장식과 문양으로 성격 지워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자수는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고 그 솜씨와 구성에서 절묘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구체적인 삶에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시각과 촉각 모두에 호소하는 자수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인의 심미관과 색채관, 그리고 조형의식을 비롯해 우리 선조들이 꿈꾸고 갈망했던 생의 욕망들을 대면하게 된다.
임명희는 특정 자수(이미지)를 선택한 후 그 자수에 걸 맞는 또 다른 풍경, 상황을 결합시켜낸다. 일종의 허구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미 자수이미지는 환영적 이미지인데 그것이 실제 풍경인양 일종의 착시를 조장한다. 자수와 사진,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은 평면의 사진이미지에 촉각적인 자수를 얹혀놓는 일이기도 한데 그 촉각성(자수의 결)을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검 프린팅 기법을 사용했다.
물론 회화적 효과(민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검 프린트는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민화나 실제 자수가 개입된 상황을 불현듯 안겨주기도 한다. 자수나 검 프린팅 기법은 모두 수공이 요구되는 아날로그 기법이고 더불어 이 둘을 연계시키는 포토샵처리가 가미되면서 이 최종적인 사진 안에는 여러 방법론과 시간, 흔적이 몇 겹으로 누벼져있다. 본래 인간의 지극한 소망과 환상,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의 도상으로 자리한 자수문양은 그 자체로 허구적 이미지다.
그것은 또한 한국의 전통 문화 안에서 집단적으로 꿈꾸었던 상징들이다. 무병장수와 부귀영화, 부부금슬과 다손다남의 전형적인 행복의 도상들이다. 작가는 그 개별적인 자수문양을 본래의 맥락에서 추출해 그 문양과 어울리는, 그것으로 인해 꿈꾸었던 장면, 그것과 잘 어울리는 배경을 합성했다. 일종의 콜라주이자 허구를 실제로 둔갑시키는 일이고 사실과 허구가 뒤집어 지는 치환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진은 사진으로 구현된 일종의 민화이자 평면의 바탕에 촉각적, 물성을 부여하는 듯한 야릇한 사진이며 동시에 우리 선조들이 일상에 수놓았던 다양한 문양을 통해해 꿈꾸었던 인간적 욕망과 행복의 추구를 현실의 시점에서 새삼 반추하게 한다. 아울러 이는 작가 자신의 유년의 기억, 향수와 강하게 연동되어 있다.
아울러 그것은 단지 지난 시절의 도상의 차용이나 연출에 머물지 않고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오는 한국인의 심성과 꿈에 대한 모종의 유전적 형질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