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천자유희전(千字遊戱展)_전정우(全正雨) 서예전
기 간 : 2013.3.8 - 2013.3.31
장 소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요즘 일본에서는 퍼포먼스 붓글씨가 유행이다. 주로 고등학교 축제에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인데 고등학교 서예부 학생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무대에 올라 빗자루만한 붓으로 장판지 2장 크기도 더 되는 종이위에 ‘힘내자’라든가 ‘하늘을 향해 걷자’ 등의 글귀를 많은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큼직하게 써내려가는 종류의 이벤트이다.
<衆 20, 아름다운 동행> 45x53cm <無 6, 아름다운 동행> 90x90cm
<심은농필천자문(沁隱弄筆千字文> 2013년 각 240x90cm 부분
학생들의 치기라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이 따지고 보면 글씨 예술의 본령이다. 즉 예술로서의 글씨는 이들 이벤트가 단적으로 말해주는 일필성(一筆性)에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흔히 갑골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의 형상을 지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초기에는 쓰는 사람 뜻대로 변형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온 게 진시황의 문자체 통일이다. 그렇게 되자 글자는 의사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실용적인 도구라는 울타리에 갇히게 됐다.
<김생(金生) 행서 천자문> 2012년 205x70cm 부분
여기에 바람구멍을 내고 글씨가 예술이란 것을 입증한 사람이 천수백년 전의 왕희지이다. 글씨란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해 교양이나 철학, 사상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을 그는 천고(千古)의 사례가 된 난정서 등을 통해서 입증했다.
<왕탁(王鐸) 초서 천자문> 2012년 205x70cm 부분
이래서 글씨는 예술의 어엿한 한 장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장르가 급속히 해체중이다. 한자가 문화 속에서 사라지고 글씨 자체를 손으로 쓰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 어떤 글자가 의사전달용 실무글자이고 어느 글자가 예술성이 담긴 글자인지 일반인들이 전혀 분간할 수 없게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직업서예가들의 애간장이 탈 현상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각체 천자문 초고> 글자체별로 천자문을 구성한 초고
전정우의 이번 서예전은 과장해서 말하면 옆으로는 걱정만 입에 달고 있는 직업서예가에 대한 어퍼컷이랄 수 있다. 또 글씨예술의 본령이라는 일필성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날린 스트레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혼서(혼서) 천자문> 2010년 205x70cm 부분. 손에 익은 여러 서체를 혼합해 쓴 천자문이다.
그는 2004년부터 천자문쓰기에 매달렸다.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인데 그는 이를 모두 다른 글자체로 시도했다. 한자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라는 다섯가지 공식 글자체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행서라도 왕희지가 쓴 행서체가 있고 조선의 한석봉이 쓴 행서체가 다른 것이다.
<일자서(一字書) 천자문> 2010년 205x70cm 부분
9년 동안 그는 중국은 물론 한국의 유명 서예가의 글자체 120가지를 가지고 천자문을 써내려갔다. 예를 들자면 김생체 천자문이다. 신라의 명필 김생은 생전에 천자문을 쓰지 않았다. 전해지는 그의 글자를 바탕으로 써놓지 않은 글자까지 연구해가며 김생체 천자문을 완성한 것이다.
<가향(家鄕)> 2012년 57x70cm
연구와 연습이 필수적인데 이렇게 완성된 글자는 작은 글자, 큰 글자, 낱글자 등 다양한 변형을 거치면서 손을 통해 익힌 것이다.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여기에 있다. 즉 서예(書藝)가 퍼포먼스 이전에 내공에 필수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 것이다. 관람객은 120체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간 과정을 눈길 따라 확인할 수 있다.
120체 대자(大字) 천자문
보기에 따라 이는 진부한 재탕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미 미술쪽에서 이응로, 남관, 김기창, 서세옥 등이 문자 그림의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가인 이들의 문자 추상은 다분히 머릿속의 서화동원(書畵同源)이란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그의 문자그림 세계는 손에서 시작해 마음으로 넘어가면서 그림유희로까지 전화(轉化)됐다는 점에서 니보(niveau)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衆 1> 2013년 60x70cm <衆 17, 아름다운 동행> 2013년 96x187cm
이 전시에는 국내 서단의 내노라 하는 원로, 중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지독한 자기 수련, 새로운 경지의 진입,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 등등. 이 정도의 범위와 경지로 펼쳐놓은 전시라면 아직 서예 예술이 대중 속에 남아있는 일본이나 중국에 가져다 놓아도 그들 역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