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영택(미술평론가)
전시명: 임영숙展 장소: 세종갤러리 기간: 2013.3.26-4.7 |
임영숙, 밥, 장지에 혼합재료, 130X130cm, 2013 |
임영숙은 최근 몇 년 동안 커다란 밥그릇 안에 꽃을 그려 넣고 있다. 밥과 꽃이 사뭇 초현실적으로 조우하고 있는 장면이다.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눈부시게 하얀 밥그릇에는 흡사 달덩이처럼 수북한 밥이 부풀어올라있다. 장지에 전통적인 채색화기법으로 공들여 올리고 우려낸 붓질이 이룬 밀도 있는 색채감과 화려한 꽃이 어우러진 이 그림은 단촐하면서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좋은 그림은 무엇보다도 신심과 열정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림이 기교와 장식으로만 허용되지 않고 개념과 논리로만 가능하지 않듯이 지금 현대미술에서 찾기 어려운 결정적인 여백은 바로 저 신심과 열정이란 영역이기도 하다. 간절한 그리기와 무욕과 무심의 시선에서 지극함으로 끝을 밀고 가는 그 여정말이다. 그렇게 보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흡사 선승들이 화두 하나 들고 맹렬 정진하는 구도의 길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인다. 작가 또한 '밥'을 화두삼아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것은 밥 그림으로 보시하는 일이고 밥 먹는 이들을 떠올리며 공양하는 일이자 자신을 치유하고 밥과 생명의 소중함도 헤아려보는 일이 무시로 겹쳐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목단을 비롯해 국화, 매화, 난, 동백 등이 밥 안에서 분수처럼 피어오르고 구름처럼 떠다니고 정원처럼 가득하다. 저 밥 한 그릇 안에서 온갖 아름다움과 간절한 생의 소망과 기원이 정신없이 부활하는 것이다. 단색의 배경을 뒤로 하고 기품 있게 자리한 하얀 밥그릇의 저 결연한 백색은 밥의 소중함과 한 그릇 밥을 먹고 생을 이어가는 일의 숭고함을 단호하게 표백한다. 화면의 상단 끝까지 밀고 올라간 밥알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농사짓고 밥 지어 먹는 고단하고 힘겨우며 정성스러운 일, 그 밥을 먹고 살겠다는 온갖 생의 아득한 역사를 중층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해가 되고 만월이 되고 산이 된 밥은 이제 온갖 꽃들을 소리 없이 피워내고 있다. 밥이 정원이자 꽃밭이고 깊은 산이자 아름다움과 생명을 피워내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밥으로 통한다. 근작에 등장하는 꽃들은 이전 작업에 비해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꽃 한송이가 홀로 터질듯이 피어있기도 하고 화면 전면으로 작은 꽃들이 눈송이처럼, 비처럼 내리기도 한다. 꽃의 약동과 활기, 농염과 분방함이 감촉되는 변화다. 꽃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도상과 상징적 기호가 되어 다가오고 또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대상이 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