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문봉선- 독야청청(獨也靑靑) 기 간 : 2012.12.12-2013.2.17 장 소 : 서울미술관
소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소나무는 심상치 않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때에는 무덤덤하다가도 그림 속으로만 들어가면 ‘남산위의 저 소나무’에서 ‘일일송정 푸른 솔’은 물론 세한삼우에 만고지절 등등의 이미지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저절로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회화에서 그림 속 소재는 단순한 현실을 넘어 대개 은유와 상징을 나타낸다. 한국 회화의 수많은 소나무는 그런 점에서 어느 것 하나 현실의 소나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그리든 거기에는 절개와 의지 하다못해 장수(長壽)의 코드가 담겨있다. 보는 사람도 으레 소나무 그림을 보면서 가지나 비늘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붓을 든 화가의 가슴속, 머릿속의 생각과 사상을 짐작하는 일이 먼저가 됐다. 그런데 1백 여 년쯤부터는 여기에 골치 아픈 일이 더해졌다. 서양 근대미술과의 접촉이다. 이때 마주친 서양미술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재현 표현에 충실한 장르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격히 보자면 그 크로스오버 무렵의 서양미술은 이미 사실적인 재현을 버리고 있었다. 인상파에서 큐비즘을 거쳐 추상미술로 나아가는 길은 사실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 또는 가슴 속의 것을 표현하는 주관의 길이었다. 이는 동양에서 말하는, 화가의 주관적인 뜻을 그리는 ‘사의(寫意)’의 세계라 할 만한 것인데 서양은 새삼 여기에 발을 담그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동양에서는 이런 ‘사의’ 그림은 이미 수백 년 동안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매너리즘에 빠져 가짜에, 포장만 그럴 듯한 생기 없는 ‘사의’ 그림이 속출하는 형편이었다. 즉 동양에서 사의(寫意) 탈출을 모색할 무렵, 신문명을 타고 하이컬러처럼 여겨지는 서양적 사의(寫意)의 길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근대이후 오랜 동안 계속돼온 한국화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서양적인 주관 표현과 전통적인 사의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아니면 어떤 합리적 결별 이유를 찾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어찌 보면 화가가 아니라 이론가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임 문제는 별개로 치고 문봉선(文鳳宣)의 최근 소나무 그림은 그 장고의 끝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출구라고 할 수 있는 성과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은 우선 재현에서 시작해 그 재현을 해체하고 다시 주관의 세계로 재진입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이런 장대한 실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사의의 재해석과도 스스로 조우하기도 했다. 1993년 무렵부터 그는 전국의 이름난 소나무의 사생을 시작했다. 스케치북에 담은 이 소나무에는 비늘도 있고 솔방울도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가까워 오면서 그는 비늘도 버리고 솔 이파리도 버렸다. 그리고 현지에서 스케치한 하나하나의 형체도 버렸다. 이렇게 버리는 대신 가슴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추상 세계의 소나무를 택했다. 된 먹(焦墨)을 수없이 그어 그려낸 검은 소나무 줄기는 경주, 양산이나 제주의 어디에 서있는 그 소나무는 아니다. 또 보는 사람이 짐작하고 기대하는 절개의 소나무도 아니고 장수(長壽)의 소나무도 아니다. 이 소나무는 그의 가슴속에 뿌리내린 소나무로 오랜 세월이 빗어낸 자연의 생명력이란 무형의 세계가 유형의 모습으로 코드화된 소나무인 것이다. 당연히 이 소나무는 현실이 아닌 추상의 소나무이고 사의의 소나무라 할 수 있다. 형상이되 그 형상에 억매이지 않고 아티스트의 추상적 주관 세계로 이어지는 현대 미술의 입구를 한국화가 문봉선은 스스로 찾았다고 할 수 있다.(y)
<소나무-영주> 2011, 한지에 수묵, 60x90cm
<소나무-울진> 2011, 한지에 수묵, 70x95cm
<설송 I, II> 2012, 한지에 수묵, 189x96cm
<소나무-강릉 초당송림> 2012, 화선지에 수묵, 245x750cm
<소나무-경주 삼릉 송림> 2012, 화선지에 수묵, 245x100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