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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택(미술평론가)

  전시명: 이만수展 

  장소: 그림손갤러리

  기간: 2013.1.23-2.5

이만수, 산조, 65.5x96cm, 한지에 채색, 2006

  이만수의 근작은 산조’(散調)란 제목을 달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들마다 잔잔하고 시정이 넘치면서 은은한 운율과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들로 무성하다는 느낌이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음악이 있다. 우리네 가락과 운율이 짙게 배어 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가 보다. 혹 유년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추억을 길어 올리고 싶었기도 했던가 보다. 그림은 시각과 청각 모두를 가볍게 흔들어댄다.


한지 위에 아교를 바르고 토분과 호분을 반복하여 칠해 만든 독특한 화면은 부드럽고 연한 색채로 덮여 있다.그것은 칠해지거나 스며들어 있다기보다는 종이와 완전히 밀착되어 견고하고 투명한 지지대가 되었다. 일정한 두께로 마감되어 있어서 그 피부 위를 긁어서 생긴 자국이 붓질을 대신해서 독특한 선묘의 맛을 자아낸다. 화면은 매우 얇은 저부조를 만들어 보인다. 지극히 평면적이면서도 긁어서 생긴 상처들과 그려진 이미지, 그리고 콜라주로 부착된 도상들로 인해 화면은 섬세한 요철효과로 인해 공간감을 자극한다. 그려진 부분과 인쇄된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콜라주, 여백 같은 바탕 화면에 수직과 수평으로 지나가는 붓질/, 작게 위치한 일련의 도상들이 만나 형성한 화면은 독특한 시감을 만든다. 주어진 평면위에 모든 것들은 평등하게 자리하고 존재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범신론적이고 물활론적 사유가 고여 있다. 붓이 칼이나 연장이 되어 수직으로 흩어나간 자취는 마치 마당에 빗자루 질을 해서 생긴 흔적 같다. 땅위에 새긴 무수한 인연과 시간의 자취, 지난 시간의 궤적과 뭇 생명체들이 대지/마당과 함께 했던 삶의 얼룩과 잔상들이 아롱진다. 그의 화면은 그대로 우리네 전통적인 마당이다한국인에게 마당이란 장소성은 한국 문화 특유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다. 비교적 넓은 마당을 두고 사람과 가축, 짐승과 꽃과 새들이 한 식구로 살았으며 그 위로 사계절의 시간이 내려앉았고 눈과 비가 왔으며 꽃잎이 떨어지거나 새가 날아와 앉았다 갔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발자취와 그분들이 뒷모습이 어른거리고 누군가 태어났고 누군가 죽어서 그 마당을 마지막으로 생의 인연을 끊어내고 산으로 갔을 것이다. 그는 화면을 유년의 집 마당으로 설정했다. 바탕은 마당처럼 처리되고 붓질은 빗질처럼 구사되는 한편 마당에 서린 모든 흔적들을 촘촘히 그려 넣고 오려 붙였다. 그는 추억 속의 마당을 화면 위로 불러들여 재구성했다. 조감의 시선 아래 펼쳐진 세계는 자연과 사물, 인간이 바글거리는 기이한 풍경을 선사한다. 마치 산수화에서 접하는 시방식이 납작하게 평면화 시킨 공간 위로 스물 거리며 지나간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내밀한 추억과 인성에서 차분하고 격조 있게 스며 나오는 이런 그림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글: 박영택(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0.2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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