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삶과 풍류 –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 갤러리현대/ 2013. 1. 15 - 2. 24
조선시대 생활을 그린 속화(俗畵), 즉 풍속화는 숙종 때의 윤두서까지만 거슬러 올라간다.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등을 거쳐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유명한 작품이 제한적이고 낙관이 없는 작품도 많지만 이 풍속화 장르는 그 흥미진진함 때문인지 최근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갤러리 현대에서 기획된 이번 전시는 규모로 보아 세 덩어리이다. 본관 1층 조선후기 풍속화 명작, 2층에서 열리는 단원과 혜원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원화 춘화첩, 별관인 두가헌에서 열리는 19세기 개화기 풍속도를 그린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들이 세 번째이다.
윤두서 <석공공석도>, 조선후기, 비단에 수묵, 23×15.8cm
윤두서의 <석공공석도>는 구성이나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과 표정 모두 생생하고 절묘할 뿐 아니라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처럼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과 분위기까지 전달되는 수작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을 생각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진취적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감식가였던 석농 김광국은 그 옆에 다음과 같은 화평을 덧붙였다.
“이 <석공공석도>는 공재가 그린 것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속화이다. 자못 형사를 얻었으나 관아재에 비한다면 오히려 한 수 아래라 하겠다.”
형사(形似)를 얻은 것이 오히려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방해하는 요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사람의 눈으로는 감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본관 1층 전시장에서는 이밖에도 조영석의 <이 잡는 노승>, 혜원 신윤복의 <후원탄금도>, 긍재 김득신의 <행여도>, 소당 이재관의 <오창명상도>, 심전 안중식의 <평생도> 등 조선시대의 삶을 드러내는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조영석 <이 잡는 노승>, 조선후기, 종이에 수묵채색, 24×17.5cm
신윤복 <후원탄금도>, 조선후기, 종이에 수묵채색, 23.6×31.5cm
김득신 <행여도>, 조선후기, 종이에 수묵, 31×41.8cm
이재관 <오창명상도>, 조선후기, 종이에 수묵채색, 23×27cm
오동나무가 있는 집 마루에서 생각에 잠긴 여인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외로운 듯한 여인의 얼굴이 아름답다.
안중식 <평생도>, 조선후기, 비단에 수묵채색, 각 150×33cm(10폭)
양반 평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그린 평생도 중 돌잔치와 혼인의 모습 부분이다.
기산 김준근 <시집가고>, 19세기말, 비단에 채색, 30×36cm
이번 전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고품격 춘화 전시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일본 춘화전시 LUST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의 춘화 원화가 이렇게 한꺼번에 일반에 공개되는 일은 흔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운우도첩(雲雨圖帖)》 중, 종이에 수묵담채, 28×38.5cm
이 전시에서 공개된 《운우도첩(雲雨圖帖)》과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풍으로 회화성만 놓고 보자면 수준높은 그림들이라고 할 수 있다.(화첩의 이름 또한 우아하다. 구름과 비 그림, 하늘과 땅이 한번 만나다!) 이웃인 중국 명, 청이나 일본 에도시대에 비해 조선에 춘화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유교이념이나 상업발달의 차이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일부러 춘화를 없는 듯이 대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대응이 아닐까.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 중, 종이에 수묵담채, 23.3×27.5cm
그림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춘화는 인간이 살았던 시대의 분명한 문화적 자산이고, 예술적 결과물일 수 있다. 더욱이 전시에서 보여지는 두 춘화첩의 다채로운 인물들과 상황, 배경은 상당히 흥미롭다. 당시의 성문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신분사회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과 풍자도 재미있다. 야외장면이나 소박한 방안의 배경은 주된 성애장면과 어우러져 생동감 있으면서도 묘하게 아늑한 느낌을 준다.
새해 초부터 야한 그림을 어둑어둑한 전시실에서 혼자 감상하려니 왠지 좀 음탕한 사람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곧 봄이 올 텐데 겨울에 춘화 좀 보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