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유리 삼천년의 이야기-지중해, 서아시아의 고대 유리 기간 : 2012년 11월 27일 ~ 2013년 2월 17일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1926년 한국을 방문 중이었던 고고학 전문의 스웨덴 황태자를 환대하기 위해 식민지 일본 관리들은 경주의 한 무덤을 반쯤 파놓고 기다렸다. 벽안의 황태자를 위해 마지막 삽질의 영예를 남겨 놓은 것이다. 바로 이때 저 유명한 신라 금관이 출토됐다. 당시까지 관리 번호만 매겨졌던 이 신라 무덤은 금관 출토를 계기로 스웨덴의 서(瑞)자와 금관 봉황장식의 봉(鳳)자가 합쳐져 서봉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이 서봉총에서는 금관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이 한없이 부러워했던 또 다른 유물도 함께 발굴됐다. 금관만큼 하이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그 시절 최상급 국제 교역품인 유리잔과 유리완이었다.
초기 유리는 자연 그대로 소성해도 터키석(라피스라즐리)과 같은 푸른색을 내 보석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이들 유물은 고대 신라의 문화와 교역이 중국은 물론 유라시아 대륙 저편의 서아시아지방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들이었다.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이 시대의 유리 유물이 발굴된 사례가 없었다.
알라바스트론은 입주둥이가 벌어지고 작은 손잡이가 두 개 달린 병을 말하는데 주로 고급 향유를 담아 사용했다. 주로 코어(Core) 기법이 쓰였다. 코어기법은 뭉뚝한 막대 끝에 녹인 유리를 말아 붙이고 형태를 만들고 속을 긁어낸 것이다. 이 작은 병은 그 위에 다시 색유리 막대를 두른 다음 녹이면서 긁거나 밀어내 꺽쇠 문양을 넣은 것이다.
서봉총을 비롯해 황남대총 등 신라의 구분에서는 이후 다수의 유리잔, 완, 병 등이 출토됐다. 그 외에 유리구슬도 대량으로 출토됐다. 천마총에서는 천마를 그린 말다래 옆에 수백개의 유리구슬이 함께 발굴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하고 수적으로 많은 자료를 놓고 일부에서는 신라 현지 제작이라는 설도 주장하고 있다.
밀납으로 암수 두 개의 틀을 만들고 그 사이로 녹인 유리를 부어넣어 만드는 캐스트(Cast) 기법이 쓰였다. 신라에도 이런 기법으로 만든 완이 출토됐다.
이 전시는 고대 신라의 영화를 말해주는 유리 유물들의 발상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실크로드에 매료된 일본의 국민화가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 1930-2009)가 수십년에 걸친 실크로드 현지답사를 통해 수집한 중동과 지중해 일대의 유리 유물 375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5세기에서 이슬람 전성기의 15세기까지 약 3천년에 걸쳐있다.
모자이크 기법은 여러 개의 색유리 막대를 형상을 염두에 두고 뭉쳐 녹여서 만든 것이다. 김밥에 얼굴 문양을 넣는 것과 기법이 같다.
신라 이후 한반도에서는 유리 문화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따라서 이 전시는 고대신라 문화의 또 다른 영광을 기억과 눈앞의 중동, 지중해 유물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전시라 할 수 있다.
고대인의 눈에 주술이 담겨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역이용해 사악한 것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자이크 기법의 구슬 속에 인물이 든 것은 신라의 미추왕릉에서도 발굴된 적이 있다.
대롱불기(blowing)의 또 다른 기법으로 대롱에 묻힌 유리를 처음부터 마련해놓은 틀 안에서 불어 형태를 잡은 것이다. 틀에 불기(Mold-blown)라고 한다.
대롱불기로 형태를 잡은 뒤에 표면을 집게로 집어내 돌기를 만드는 기법이다. 금령총에서 이와 유사한 유리잔이 출토됐다.
대롱불기로 완성해 식힌 다음 그라인더 같은 것으로 표면을 갈아내 연속 무늬를 넣은 것이다. 커트 글래스(Cut glass)라고 한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유리컵의 아랫부분은 이처럼 커팅돼있다.
대롱불기를 한 위에 돌기를 붙이고 다시 이를 커팅해낸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점에서 매우 고급 유리그릇이다. 이런 돌춘커트 장식은 일본 고대유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 유품이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