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권태균 展 장소: 갤러리룩스 기간: 2012.12.5-12.18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권태균, 주인따라하기-경남함양 1988년
한 해가 맹렬한 추위 속으로 소멸되는 느낌이다. 모든 게 얼어붙고 눈에 덮여가는 연말이다. 전시장으로 가는 길들도 예외없이 차가운 냉기에 가라앉아 더없이 쓸쓸하다. 몇 장의 흑백 사진 속에 응고된 지난 시간을 고독하게 마주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 농촌의 풍경과 농민들의 모습이 입김처럼 되살아난다. 한국 산하의 전형적인 풍경이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노동하는 한국인의 전형이 고스란히 박혀있다.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맹력히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농촌의 풍경이자 농부들의 초상이다.
한국미술에 담긴 다양한 미적 가치와 사상, 기법, 표현방식 등을 전제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현대미술의 현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권태균, 타작하는날-경남함양 1988년
권태균, 바람부는날-전남벌교1987년
사진은 이미 있었던 그 순간을 그러나 지금은 부재한 장면을 기이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사라지고 지워진 풍경이자 여전히 살아서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유령 같은 장면이다. 사진은 결국 죽음을 안기고 사라진 순간을 덧없이 회상하게 해주는 한편 그 찰나의 시간을 영원히 봉인해 오랫동안 응시하게 한다. 결국 내가 보는 이 사진 속 풍경과 인물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미지의 것이 되었겠지만 남겨진 사진을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되어 떠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지난 시간 속의 한 순간을 목도하면서 여러 상념에 잠긴다.
권태균, 을숙도의 두노인-경남김해1983년
권태균은 오랫동안 이 땅의 여러 장소를 소요했다. 그가 찾아다닌 곳은 시골의 어느 장소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순박한 노동으로 자연 속에서 꿋꿋하게 생애를 지켜온 눈물겨운 이들의 목숨들이 그 안에 바글거린다. 그 사진들이 너무 아리다. 한 평생 대지에 몸을 박고 작물을 길러내며 정직하게 살아온 이름 없는 농부들의 초상이, 그들의 노동과 가난한 생애와 남루한 살림살이와 허름한 옷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자연풍경이 침묵 속에서 마냥 저릿저릿한 것이다. 권태균의 사진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그저 평범함 장면의 담담한 기록인 것 같지만 실은 한국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고 그곳에서 노동하는 이들의 육체와 그들의 가난하지만 눈물겨운 삶을 보여준다. 늙은 부부가 해를 등진 체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간다. 땅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다. 긴 그림자가 짙은 시름처럼 바닥에 드리워져있다. 뒤따르던 개도 주인과 똑같은 포즈로 걸어간다. 저 뒤로 그들이 걸어왔던 힘겨운 길들이 죄다 펼쳐져있다. 새삼 이 각박하고 힘겨운 현실에서 용케 죽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이들의 생애를 떠올려본다. 저무는 한 해는 그런 이들의 목숨을 기억하게 한다. 올 한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순박한 이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현실을 만들어나가야 할 텐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