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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욱-세상을 보여주는 얼굴
  • 3503      

글: 박영택(미술평론가)

   전시명: 김정욱展 

   장소: 갤러리스케이프 

   기간: 2012.11.28-2013.1.11

 

소녀들의 둥근 얼굴이 가득하다.으스스하고 괴이하고 섬찟하지만 동시에 귀엽고 아름답다. 양가적 감정을 동반하는 수묵으로 그려진 이상한 소녀의 얼굴들이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위치한 이들은 정해진 기존의 세계로 편입되기 전이고 아직 어른으로 인정받기 직전의 모호한 상황에 방치된 이들이다. 꿈과 낭만과 순정이 그득한 표정이면서도 어른에게서 볼 수 없는 낯선 세계를 자아내고 사악함과 천진함, 순박함이 흔들리듯 겹쳐있다. 작가는 그런 얼굴에서 일종의 판타지를 그려내고 상상하면서 더러 영적인 부분을 만나기도 한단다. 작가에게 얼굴은 현실계에서 비현실계로 나가는 통로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 상상의 공간에 닻을 내리게 하는 곳이다. 그것은 현존과 부재 사이에 암화처럼 드리워져 있고 느닷없는 암전처럼 명멸한다.

작가는 인물화를 통해 현실과 이어져있는 또 다른 세계와의 소통이 가능한 지점을 그려보이고자 한다. 단독으로 혹은 둘, 셋이 모여서 정적과 고독 속에 침잠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것도 있고 측면을 보여주는 얼굴도 있다.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괴기하기도 하지만 또한 귀엽기도 하다. 기존에 익숙하게 보았던 인물과는 무척 다르다. 전적으로 이 작가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 얼굴은 분명 누군가의 얼굴로부터 파생되어 나와 작가의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형, 해체 혹은 작의적인 훼손으로 변질(?)된 얼굴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직관에 의해 파악된 그 어떤 느낌을 회임하고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 출산하듯 하나의 얼굴을 그렸다. 눈과 입, 눈물과 피, 머리카락만이 부동의 몸에 균열을 일으키며 상처처럼, 아픔처럼 응고되어 있다. 대부분 먹만으로 그려지고 칠해진 화면은 묘한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 어두운 배경, 바탕을 등지고 크고 둥근 얼굴이 달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콘이나 성화의 익숙한 도상이나 불상의 의습이 떠오른다. 관습적인 종교화의 도상을 빌어 기이한 얼굴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나 네팔의 가면 같기도 하다. 단순화시킨 얼굴에 눈만 구멍처럼 뚫려 까만 응시를 전한다.

인물들은 한결같이 먹으로 채워지고 적셔진 눈을 지녔다. 김정욱은 눈을 통해 자신이 보고 읽은, 감지한 인간을 형상화한다. 기술한다. 더러 마스카라 번진 까만 물이 눈물과 함께 흐르고 피눈물같은 것들도 얼룩처럼 스며들어있다. 인간의 얼굴에서 눈은 감정을 드러내는, 감출 수 없는 치명적 부위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보이는 눈, 그래서 너무 많은 시간과 그 시간의 양만큼 눌린 기억과 상처를 간직한 눈을 본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다. 얼굴이 아니라 눈이 결국 이 인물들의 내면이랄까, 마음과 정신, 굴곡심한 사연과 주름 잡힌 상처의 결들을 찰나적으로 보여주다 멈춰있다. 커다란 눈이 먹을 머금고 침침하다. 보는 이들은 그 눈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강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보는 이를 마냥 빨아들일 것도 같다. 보는 이들은 그 눈에 함몰된다.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깊고 가늠하기 어렵고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구멍이다. 자궁 같은 눈, 텅빈 구멍 같은 눈이다. 그림 속 얼굴의 시선을 통해 나는 대상이 되었다. 타자와의 만남은 내가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그가 대상이 되는, ‘시선의 싸움이다. 바라보는 자는 시선이고, 바라보여지는 자는 눈이다.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부득불 눈이 된다. 하나의 대상으로 자꾸 얼어붙는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

편집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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