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윤세열展 장소: 갤러리 H 기간: 2012.11.21-11.27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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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 한양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 천하제일 명당이라고 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이자 한강이 동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을 휘감아 돌며 바다에 이를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계곡과 맑고 깨끗한 물, 숲과 수목이 어우러져 천하절경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그 아름다운 한양의 풍경은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겸재는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 살던 한양 서울 곳곳을 진경으로 사생해 남겨두었다.
그가 살던 공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결실이다. 대부분 사방 30cm 이내 크기 의 작은 화면에 담긴 그 풍경들은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겸재가 몸소 다니고 거닐고 유람하며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그려낸 풍경들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정한 공간에서 나서 자란다. 따라서 한 개인의 인성과 심미성의 근원은 바로 그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화가란 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생이 거하는 특정 공간을 사유하고 이를 그림으로 형상화해왔다, 그것이 조선시대 진경산수이기도 하고 동시대 도시풍경이나 도시산수이기도 하다.
윤세열은 자신이 30여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서울 공간을 동양화 재료로 그려내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H) 비단의 본바탕이나 혹은 오랜 시간의 더께를 연출하기 위해 오리나무열매를 달인 물로 염색한 비단을 사용한다. 사실적 묘사, 재현에서 벗어나 필의 맛을 살려가면서 선을 화면에 전면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무척 구체적인 풍경의 재현인 것 같지만 실은 필선의 집적에 다름아니다. 그 모필의 맛이 흡사 쓰기와 그리기의 혼재로 이루어지고 그러한 구분 없이 화면을 채우는 형국이었다.
익숙한 서울의 특정 공간을 지시하고 그 안에 빼곡하게 자리한 건물과 뒤로 병풍처럼 둘러 처진 산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만 실은 그 형상들은 온통 필촉과 붓질, 특정 문자(한자)꼴로 가득하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도시풍경으로 다가온다. 시간과 거리의 차이에 의해 달리 보이는 그림이기도 하고 달리 생각해보면 ‘서화동원’의 전통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놀이와도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의 경우 근대기에 들어서 전통 서화는 서와 화의 날카로운 분리를 통해 해체되었고 이후 그 두 영역은 별개의 것으로 떨어져나갔다. 아울러 전통 산수의 맥락 역시 서구 풍경화 장르로 전이되면서 재료만 동양화 재료를 구사하는 식으로 변질되었다. 당연히 세계를 보는 시각과 그것의 인문적 사유와 이의 형상화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통해 산수화를 그린다 해도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그림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와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이 도시 공간을 문제시하면서 이를 다양한 방법론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른바 도시풍경이 하나의 주된 장르화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동양화 재료를 다루는 이들 상당수가 산수화에 도시풍경을 뒤섞거나 과거의 현재의 장소를 동일 화면에 올려놓는가 하면 전통산수화에 깃든 여러 맥락을 당대 도시 풍경 속으로 호출하고 있다. 선비들이 지향했던 탈속적 생의 열망을 반추하고 자연과의 총체적 조화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이상적인 삶을 꿈꾸었던 자취를 상기하고자 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그림은 당대를 살아가는 이로 자기 생의 공간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바람직한 생의 욕망을 도모하는 이의 탐구로 비쳐진다. 마치 선비들이 산수화를 그렸던 바로 그 의도 말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