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남정현展 장소: 가나아트스페이스 기간: 2012.11.14-11.20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남정현,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2012 |
남정현의 그림은 추상인 셈이다. 선과 선, 색과 색, 붓질과 붓질의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만남, 조응이 우선되는 그림이다. 특별한 대상이나 이야기는 사실 부재하고 오로지 회화적인 시각경험만이 자리한 그림이다. 수평으로 자리한 캔버스 표면위에 마치 실타래나 꽈배기형상을 한 붓질이 올려져있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이 자취는 숨가뿐 일획의 속도감과 묽은 물감의 농도에 따른 번짐과 겹침, 응고의 효과를 산뜻하게 안겨준다. 무척이나 회화적인 맛이 감각적으로 올려져있다. 물론 그 선은 구체적인 외부대상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들에게 자유로운 연상이나 미적 경험을 야기한다. 이 점이 주관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순수한 시각적 경험을 주장했던 모더니즘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다. 이 자발적인 드로잉, 붓질은 여전히 화면구성이나 무게중심. 여백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조율하는 다소 ‘까다로운 즉흥성’에서 나온다. 모필의 탄성과 물의 농담, 중력 등이 얽혀 만든 매력적인 풍경이다. 나로서는 이 선 작업이 흥미로웠다.
캔버스의 표면을 순식간에 쓸고 지나가면서 그 피부위에 물감/붓의 궤적을 올려놓았는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응고된 그 자취가 우연성과 자연법칙의 작용을 받아 마무리되는 과정이 다분히 ‘자연스러운’ 그림을 생성시켰다. 이 자연성은 한국 전통미술의 한 성격이기도 하고 그 전통을 환생시켜 서구 현대미술과의 접목을 통해 독자적인 한국 현대미술을 만들어 내려했던 깊은 역사와 조우시키는 편이다. 생각해보니 작가는 캔버스를 세우거나 눕히고 그어가면서 ‘선’을 만들고 있다. 순수한 붓질, 붓의 놀림, 표정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순수한 시각적 경험을 야기하면서도 착시적인 효과를 동반하고 나아가 작은 붓질의 단위들로 인해 모종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거의 자동기술적인 붓놀림으로 인한 모필의 맛과 그 수묵에 유사한 농담변화로 인해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그림의 매력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