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조지연스튜디오 기간: 2012.10.24-11.30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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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연은 캔버스 화면에 손가락으로 물감을 발라 하염없이 문지른다. 정형화된 붓질의 규격에 의한 제한된 그림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으로, 신체의 흐름과 유동하는 마음의 심난한 감정의 골을 그대로 끌고 가는데 무척 용이하기에 그럴 것이다. 작가는 지문이 닳도록 화면의 피부를 간절히, 하염없이 애무한다. 그러면 이내 흰색과 청색 물감이 두루 섞여 희뿌염하고 맑고 투명하고 더러는 아스라한 하늘빛과 구름의 자취가 몽실거리며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이내 사라지고 자취를 감출 것들이 잠시 몸을 빌어 저렇게 환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구름의 자취이자 안개가 스물거리는 풍경, 혹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킨다. 안으로 말려 고부라지면서 증식하는 모양이 흡사 태극문양이나 곡옥 같고 혹은 화염문양 같은 것들이다. 혹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생명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누군가의 얼굴일까, 흩어져가는 몸뚱아리일까? 그런가하면 화면 가득 어떤 기운들이 가득 차오른다. 뜨거운 수증기나 모락거리는 열기, 봄의 아지랑이 또는 햇살이 감촉된다. 어디론가 저희들끼리 몰려가며 사라져갈 것들이 마지막 온기를 마음껏 방사한다. 그 기운에 눈이 멀듯 하다.
작은 단위들의 일정한 패턴으로 채워진 화면은 단색 톤의 섬세한 뉘앙스가 화면을 통합해준다. 모노톤의 화면은 차가운 블루로 가득하지만 그 안은 걷잡을 수 없는 존재들의 뜨거운 가득함이 있다. 수많은 존재이자 결국 하나의 세계가 다가온다.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일 것이다. 생과 사도 동일하다.
조지연의 이 그림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내 한줌의 먼지나 연기로 사라져 버린다는 아득한 사실에 대한 추모의 노래 같다. 그래서인지 화면은 출렁이고 굴곡지는 리듬감으로 가득하다. 흡사 출렁이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파도처럼 일어나는 해일처럼 어질하다. 정지된 부동의 화면에 생기와 움직임을 부여하는 곡선들은 동시에 생명을 은유한다. 그것들은 이내 소멸의 길을 간다.
작가는 작품에 <구름에서>란 제목을 붙였다. 아마도 이 그림은 구름이란 존재에 대한 형상화나 그에 대한 기억 또는 몽상일 것이다. 사실 구름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다. 그것은 명확한 형태를 짓지 못하고 수시로 흩어졌다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그때그때마다 우연적인 몸 하나를 얼핏 보여주며 흐른다. 우리가 대지에 누워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본다는 것은 사실은 붙잡을 수 없고 형체 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내 물과 바람과 무無로 종적을 감출 것들이라는 허망함과 무상함을 안겨주는 순간이다. 아마도 유한한 목숨을 지닌 인간들은 자신의 육신 역시 저 구름처럼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선명한 예감에 아프게 사로잡힐 것이다. 그래서 구름은 인생의 무상성과 죽음을 은유하는 상징이 되었다. 아울러 구름은 새로운 존재로의 환생이나 생명, 기운을 은유하는 양가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죽음과 삶은 한 몸이다.
그렇게 한국인의 전통적인 생사관에서는 우주적 생명과 인간의 생명은 유기적이라 생각해왔다. 따라서 인간 중심의 생사관은 애초부터 없다. 우주로의 환원적 사고 속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땅과 공간으로서의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삶과 죽음은 유기성을 얻는다. 우주적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조지연의 그림 속에서 구름은 생가 사가 구분없음을 일러주고 존재와 무가 결국 동일하다는 사실을 서늘하게 안겨준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