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명청시대(明淸時代)회화 展 기간: 2012. 10. 14 ~ 10. 28 장소: 간송미술관
감성을 열 것인가, 지성을 살찌울 것인가.
이번 가을 간송미술관 문턱을 넘기 전 관람객들은 작은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명청시대회화(明淸時代繪畫)”라는 올가을 간송미술관의 정기전은 명대 말기 오파화가 형식주의에 빠져든 시기의 그림에서부터 청나라 문운(文運)이 최고조에 달했던 강희, 건륭제 시기의 그림, 그리고 조선 북학파가 열심히 오가던 19세기 중반까지의 청대 그림을 그 범위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지어 말했을 때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한중교유의 흔적’ 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18~19세기 청나라 예술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예를 들어 강남의 이론가이자 화가였던 장경(張庚, 1685~1760)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그의 그림에서 그가 사왕화파에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운산소사(雲山簫寺)>처럼 동기창풍의 미법산수의 분위기를 내거나, <산촌적설(山村積雪)> 같이 이유방 풍의 간단한 필선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장경(張庚), 雲山簫寺
장경(張庚), 山村積雪
18세기 지역의 경제적 부흥을 배경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양주화파를 대표하는 양주팔괴 중 정섭(鄭燮, 1693~1765)이나 이선(李鱓, 1686~1762)의 화훼에서 독특한 풍격을 느껴볼 수도 있다.
정섭(鄭燮), 懸崖叢蘭
당시 북경은 강남의 학자와 화가들로 북적거렸고, 그들은 유리창 등에 모여 학술과 회화 교류를 맺었다. 북경에 사행을 갔던 조선 문인들도 그 교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시작 격으로 홍대용 일행을 들 수 있다.
엄성(嚴誠), 秋水釣人
홍대용은 북경으로 올라왔던 엄성과 필담으로 학문에 대해 논했으며 이후 시화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엄성은 홍대용과 단 한번 만났을 뿐이지만 죽기 직전에 홍대용의 편지를 읽고 가슴에 품을 만큼 마음 속으로 깊게 교유하였다고 한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의 연암파도 적극적인 한중회화교류를 가졌는데, 1790년에 있었던 연행에서 그들은 옹방강이나 완원 등의 학자와 교분을 쌓게 된다.
19세기 한중교류의 중심은 단연 추사 김정희. 추사는 자신의 철학과 관련되어 옹방강을 만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옹방강을 만난 이후 그의 전담화가였던 주학년(朱鶴年, 1760~1834)을 비롯 옹방강의 학문, 예술적 성향에 깊이 동조하게 된다. 김정희는 귀국 후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을 통해 <산곡선생상(山谷先生像)> 등 소식과 함께 활동한 송대 문학가의 초상화를 받기도 하였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구양문충공상> <산곡선생상> <담계선생상> 등은 옹방강이 제자인 주학년에게 그리게 해서 추사에게 보내준 그림들이다.
주학년(朱鶴年), 山谷先生像
추사의 평생 친구였던 이재 권돈인의 흔적도 볼 수 있는데, 명말 청초의 최고 직업화가였던 석두타 남영(藍瑛)의 <산수도권(山水圖卷)>에 수장인(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도장) ‘권이재’ ‘권돈인’을 찍어 놓았다.
남영(藍瑛), 山水圖卷(부분)
추사의 애장첩인 장경(張庚)의 <장포산진적첩>에는 친필로 ‘예찬과 황공망 이후의 진체 신수’라 극찬하는 글을 남겼는데, 이 화첩 또한 옹방강의 막내 아들 성원 옹수곤이 추사에게 보낸 것으로, ‘성추’라는 동심인이 찍혀 있다.
추사 김정희와 그 친구들, 후학들에 대해 조금 알고 가는 것이 전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
작품들만 보아서는 이번 전시가 다소 생경한 느낌일 수는 있다. 추사화파의 성립을 규명하기 위한 사전 초석이랄까, 내년 봄 어떤 전시가 펼쳐질지 예상해 보는 것도 간송 전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생각거리가 될 듯하다.
* 18세기 청나라의 학술적인 유행은 복잡 다단하여, 한학을 따르는 절강지역의 학자들, 안휘의 동성에서는 주자학과 당송문학을 따르는 한편, 북경에서는 옹방강(1733-1818)을 중심으로 송학을 중시하는 등 다양한 학파가 나타났으며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왕화파, 명대의 오파, 동기창화풍, 원대화풍 등이 결합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