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변용국展 장소: 갤러리SP 기간: 2012.10.11~10.31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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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국, 빛의 거울바다, 캔버스에 아크릴, 2011
모든 그림은 사각형의 화면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회화를 회화이게 하는 것은 그 사각형이다. 변용국의 회화적 행위는 그 사각형 안에서 이루어지고 사각형의 평면을 해석하는 일이자 그 내부를 연출하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란 존재는 모두 그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만 살 수 있다.
작가는 캔버스의 표면에 색을 칠해 나가 회화를 가설했다. 그 화면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빛을 발하며 환영을 일으키고 물감과 붓질(스퀴즈의 궤적)을 깊이로 보여주고 빛으로 빛나며 모종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 화면은 작가의 의식과 마음을 대신하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거울 같고 빙설 같은 장이다. 선인들의 그림 역시 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고 얼음 같은 화면이었다. 변용국의 그림은 진하게 칠해진 모서리에서 중심을 향해 점차 환하게 밝아지는 과정을 환영처럼 보여준다. 화면 가운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모서리에서 발원하는 그림이다. 가장자리의 짙은 물감의 층과 어두운 색채가 점차 가운데로 밀려들어가면서 중간 색조를 매개로 갑자기 환한 흰빛의 도가니로 몰입해버리는, 순간적인 비약을 감행해버리는 추이다. 여백 같고 영화관의 텅 빈 스크린과도 같다.
갑자기 무(無)를 대면한 느낌이다. 갑자기, 느닷없이 환한 절대적인 백색의 화면을 안겨주면서 그림은 끝난다. 그곳은 너무 깊은 구멍 같아서 시선이 자꾸 발을 헛디디며 빠져버린다. 그것은 보는 이의 시선을 무력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지워버리고 눈을 멀게 하는 화면이 되었다. 그로인해 보는 이들은 무엇인가를 보는 대신 내부로 시선을 꺾어 명상이나 몰입에 젖거나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절대적인 휴지의 시간을 만난다.
변용국의 회화는 캔버스에 서양화재료로 이루어진 그림이지만 동양화의 여백을 연상시킨다. 또한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시각적인 요소들을 연상시키고 그것을 화면 밖에서 상상하게 했던 전통회화의 한 자락을 접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이 텅 빈 화면의 중심부가 말이다. 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하는 화면을 통해 결국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비시각적인 것들을 상상하게 해주고 그것을 깊이 있게 사유하게 해주는 화면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