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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은 어보(御寶)이니라-<왕의 상징(御寶)>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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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의 상징 御寶 기간: 2012.8.1.~2012.9.30. 장소: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왕은 바로 국가였다. 따라서 국가의 행사는 약간의 외교나 행정적인 실무 사항을 제외하면 왕실 행사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왕자가 태어나 왕세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하고 죽어서 장사를 지내고 종묘에 모셔지는 일까지 모두 왕실의 일이자 국가의 업무였다.

 

<인조비 인열왕후 시호 금보(仁祖妃 仁烈王后 諡號 金寶)> 1651년 금속에 도금 9.8x9.8x7.9cm

어보는 손잡이인 귀뉴(龜紐)와 몸통으로 이뤄져 있다. 손잡이가 거북이로 된 것은 조선 초기로 한때 용 조각을 쓰기도 했다.

 

이와 같은 왕실의 업무에 수반되는 일, 특히 국왕이나 왕비 그리고 왕세자와 왕세자빈에 관련된 일, 이를 가례(嘉禮)라고 부르는데 이런 가례에 사용된 인장이 바로 어보(御寶)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과 왕비의 인장은 어보라고 하고 세자와 세자빈의 것은 어인(御印)이라고 한다.

 

<정조 왕세손 책봉 옥인<正祖 王世孫 冊封 玉印)> 1759

1759년에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하면서 만든 옥인이다. 인문(印文)에는 구첩전으로 왕세손인(王世孫印)’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전시는 그 자체가 국가의 상징이 된 조선시대의 어보를 제작, 종류, 보관 등으로 나누어 소상한 소개한 전시이다. 왕이 곧 국가라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또 다른 진면목을 살필 기회가 된다.

조선시대에 왕은 왕세자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왕세자로 책봉이 되면 이때 세자 책봉인이 제작돼 주어진다. 그리고 왕이 되면 당연히 국새를 물려받는다. 어보와 국새의 차이는 어보는 왕실 의례에 사용되는 도장이라면 국새는 외교와 행정에 사용하는 나라의 대표 도장이다 

 

<세종 시호 금보(世宗 諡號 金寶)> 1450

세종이 승하하자 신하들이 시호를 지어올리며 만든 어보이다. 이때 세종이란 묘호(廟號)도 이때 지어졌으나 어보에는 새겨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덕이 뛰어날 경우 종()을 사용하고 공적이 뛰어나면 조()를 쓴다. 인문은 영문예무인성명효 대왕지보(英文睿武仁聖明孝 大王之寶)’이다.

 

이후 국왕의 재위 중에 신하들은 왕의 공덕을 기리어 존호(尊號)를 지어 올리는데 이때도 어보를 만든다. 또 그 사유를 적은 내용을 옥에 새겨 보관하게 된다. 대개 존호는 8자로 지어진다. 예를 들어 숙종이 생전에 신하들로부터 받은 존호는 현의광륜예성영열왕이었다. 그래서 이때 만들어진 어보는 그 이름이 현의광륜예성영열왕보(顯義光倫睿聖英烈王寶)이다.

 

어보는 금속으로 된 속상자 즉 보통(寶筒)에 넣은 뒤 나무에 담비가죽을 댄 보록(寶盝)에 넣어 보관했다.

 

그리고 왕이 죽으면 신하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해 시호(諡號)를 정해 받치게 된다. 이 시호도 8자인데 이때도 어보가 새겨진다. 존호는 추가될 때마다 새로 어보가 만들어지는데 따라서 같은 왕의 어보가 10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어보를 운반할 때에는 짧은 거리는 곰이나 사슴 가죽으로 만든 호갑(護匣)이란 휴대용 운반기구를 썼다.
종묘로 옮길 때에는 채여라는 별도의 가마를 만들어 모셨다.

 

왕의 어보는 왕의 위패와 왕의 사후에 종묘에 대대로 모셔졌다. 종묘에 보관된 순조의 어보는 정말 길다.

순조는 생전의 8자 존호(체건계극중정광대, 體健繼極中正光大)에 사후에 존호 8(지성광덕홍운장화 至聖廣德弘運章化)를 더해 받았다. 그리고 시호로 다시 경문위무명인철효(經文緯武明仁哲孝)라는 8자를 받은 게 있다.

그래서 순조 어보의 이름은 이 모두를 합친 체건계극중정광대지성광덕홍운장화경문위무명철철효대왕지보(體健繼極中正光大至聖廣德弘運章化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之寶)’이다.

 


<숙종비 인경왕후휘호 어보 및 옥책(肅宗妃 仁敬王后徽號 御寶 玉冊)> 1722

1722년 숙종의 삼년상을 치루고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인경왕후도 함께 모시면서 제작한 인경왕후의 어보와 옥책이다.

물론 세자책봉 등의 쓰인 어인은 간단한 글자들도 있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가진 어보는 금이나 옥에 새긴다. 어보의 서체에 주로 많이 쓰인 글자는 전서체의 하나로 아홉 번 꺽어쓴 글자라는 뜻을 가진 구첩전(九疊篆)이다. 글자 수가 많은 경우에는 상방대전(上方大篆)이란 글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구첩전 인문의 사례로 왼쪽부터 <인목왕후금보(仁穆王后金寶)> <안순왕후금보(安順王后金寶)> <정희왕후금보(貞熹王后金寶)>이다.

이렇게 새겨진 어보, 어인은 생존 중에는 궁중에 보관하다가 사후에는 일괄해 종묘에 보관한다. 역사를 보면 외적의 침입만이 아니라 방화나 내란에 따른 약탈로 인해 도난당한 것이 상당수 있는 듯하다. 현재 기록에 전하는 어보, 어인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327개이다. 41개는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태종, 세조, 덕종, 현종의 어보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종묘의 신실에는 신주함을 기준으로 동쪽에 보장(寶藏)을 만들어 어보를 보관하고 서쪽에 책장(冊藏)을 두어 책보(冊寶)를 관리했다.(사진은 전시를 위해 복제한 모습)

 

한편 국새는 외교와 행정에 사용한 국가의 인장을 가리킨다. 중국과의 외교에 사용된 국새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었고 일본에 대해 쓰던 것은 위정이덕(爲政以德)’이다.

그리고 군내의 고위관리의 임명, 왕세자 책봉 등의 공식행사에 쓰던 국새로 10가지의 국새가 사용됐으나 종묘에 보관해온 어보와 달리 관리상의 문제로 현재는 4종류만 남아있다.(*) 

<숙종비 인경왕후 왕세자빈 책봉교명(肅宗妃 印敬王后 王世子嬪 冊封 敎命)> 1671

인경왕후를 왕세자비로 책봉한다는 교서의 말미에 찍힌 국새

 

<참고로 조선의 국새 종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국왕행보(國王行寶): 책봉, 관리 임명

국왕신보(國王信寶): 제사, 인재 추천

시명지보(施命之寶): 국왕행보나 국왕신보 대체 사용

소신지보(昭信之寶): 국왕행보나 국왕신보 대체 사용

과거지인(科擧之印): 과거 관련문서에 사용

유서지보(諭書之寶): 유사시 내리는 비밀명령에 사용

선사지기(宣賜之紀): 신하, 향교 등에 내려주는 책에 사용(현존)

제고지보(制誥之寶): 내각에서 신하, 향교에 내려주는 책에 사용(현존)

칙명지보(勅命之寶): 주임관 임명문서에 사용(현존)

대원수보(大元帥寶): 대한제국의 군통수에 사용(현존)

(*)

 

 

글/사진 SmartK
업데이트 2024.11.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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