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오윤展 장소: 아라아트 기간: 2012.9.19~10.16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
오랜만에 오윤(1946-1986)의 판화를 다시 보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가 남긴 칼로 새긴 그림들은 유혼처럼 떠돌아 어디선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나무판의 표면에 칼질을 해서 또렷하게 새긴 이미지는 군더더기 없는 형상의 요체와 흑백의 단호한 대비 속에서 한국인의 전형성이나 한국 고유의 문화적 율동을 감촉시킨다.
무엇보다도 당대 현실에 대한 그의 뜨거운 감정과 분노, 애정 등이 두루 다 녹아서 흐른다. 그 이미지는 기존 미술어법과 판이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식, 요령, 꼼수 같은 것이 하나도 않보인다. 자신이 절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에 맞춰 형상화할 뿐이다. 그저 나무판대기와 칼 하나면 족하다. 그의 모든 판화가 다 좋지만 유독 이 칼노래는 그 단호함에서 인상적이다. 붉은 색 바탕에 자리한 칼춤을 추는 남자의 눈매가 오윤 그대로다. 칼노래는 최제우가 19세기 한국 땅에 닥친 내외적 상황을 한 칼에 자르는 것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 모든 삿된 것들을 한 칼로 베는 자이다.
우리 민중들의 삶의 역사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전통을 중시한 그는 영적인 것, 신령스러운 것에 강한 공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소리와 춤사위, 전통연희, 무속이나 탈춤, 판소리, 구비문학을 좋아했고 김지하와 강증산의 이론에 경도되는 한편 홍명희 소설 <임꺽정>과 이동주의 <한국회화사>를 탐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는 현실 비판적 리얼리즘과 무속적 경향을 포함한 신비주의,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비롯된 한과 이것을 풀어내는 민중 연희의 신명 같은 것으로 구성되었다고 평가된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근대화 속에서 망실되어버렸던 ‘신명과 주술이 지배하는 세계’를 진정 추구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오윤은 바로 그러한 세계를 우리네 전통, 한국적 이미지의 본질 같은 것으로 파악했던 이다. 알다시피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지워진 전통 이미지가 지닌 주술성을 회복시킨 이는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간대에 대표작을 내놓고 함께 죽어간 오윤과 박생광이다.
나로서는 그런 오윤의 여정이 압축되어 나온 것이 1984년에서 그가 죽은 1986년 7월 5일 사이에 나온 ‘원귀도’, ‘칼노래’ 같은 작품이라고 본다. 한을 바탕으로 모든 죽임의 세계에 저항하는 한편 스스로를 해방해 나가는 생명에너지의 고양, 이른바 '신명'을 시각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살(煞)의 정체를 풀어 신명을 획득하는 우리 조상들의 생존방식의 과정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결국 살풀이에 해당한다.
억울하게 죽은 숱한 혼령들을 위무하고 그들의 아픈 상처와 한을 보듬는 살풀이로서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름아닌 무당이라고 보았다. 그는 칼춤을 추며 살풀이를 하고 칼로 억울한 이들을 형상화했다. 그는 “예술가면 무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당만큼 울려주고 감동시켜 보라”고 말한다. 오윤의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내내 귓가에 맴도는 그의 육성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예술이 살아남는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정말 진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