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이길래展 장소: 갤러리BK 기간: 2012.8.25~9.28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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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소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도 유별한 나무다. 생활주변에 흔하게 자리한 소나무와 함께 해온 생애가 한국인의 삶이다. 이길래의 작업은 동일한 구조의 동銅을 이어 붙여서 소나무를 만든다. 꿈틀거리며 솟구친 나무줄기며 사방으로 활짝 펼쳐진 솔잎, 굵고 거친 소나무 껍질의 느낌을 잘게 자른 금속으로 이룬 선들이 재현하고 있다. 실제 소나무를 닮은 이 의사소나무는 동이 지닌 색감과 물성에 힘입어 실감나게 다가온다. 강인하며 불멸하는 존재로 말이다. 반원형이나 짧은 직선의 꼴을 지닌 그 동은 일종의 세포이미지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들이 모이고 응집되어 생명체를 보여준다. 분명 소나무의 표면, 두껍고 거칠며 마구 일어나는 껍질은 조각가인 그의 창작충동을 건드려주었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자 우리 문화의 고고성뿐만 아니라 친근한 매력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생활을 아우르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하고, 정신적으로는 사유의 대상이자 서민들에게는 놀이터의 역할까지 겸하는 매우 중층적인 상징의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우리의 역사성도 깃들어 있고, 자유분방한 형태, 한 그루 나무에서 우러나오는 여러 색감, 세월의 풍화를 머금고 있는 듯한 표피 껍질 등등 많은 조형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노트)
이길래, 목근 2012-2, 시멘트, 철분, 동파이프 산소용접, 64x54x41cm, 2012
둥근 원형의 작은 동 조각들을 하나씩 용접해 소나무의 외형을 재현하고 있는 이 조각은 보는 이의 시선을 투과시킨다. 덩어리가 아니라 표면을 지닌 조각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시선은 물질의 내부를 관통시켜 형상 너머로 나가게 한다. 공간과 부단히 통하고 바깥의 공기가 수시로 이 존재 속으로 파고들고 나가기를 거듭한다. 바람과 기운이 넘나든다. 기氣가 통한다. 생명이 가능하려면 이러한 기의 소통, 호흡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내부가 이처럼 비어있는 조각은 자신의 존재를 한 눈, 한 시점에 투명하게 비춘다.
이길래, 풍경 2012-1, 동파이프 산소용접, 114x125x42cm, 2012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한 시선에 내주면서 그 전체의 모습과 그것을 이루는 단위들을 동시에 공존시킨다. 작은 단위(세포)와 그것이 이룬 전체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 평등함은 부분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되거나 소멸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니 이 조각은 부분과 전체가 동일하고 공평하다. 작고 작은 단위들이 없다면 커다란 나무는 불가능하다. 그 작은 단위들이 일정한 시간동안 자라야 그 다음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한 자연과 생명체의 마땅한 순리가 결코 생략되거나 간과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어쩌면 이길래는 동 조각을 가지고 소나무를 만들어 특정 전시공간에 식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소나무에 비하진 못하지만 우리는 이길래가 만든 이 낯선 소나무를 통해 한국인에게 유별한 소나무란 존재에 대해 새삼스런 인식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