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이성희展 장소: 갤러리온 기간: 2012.7.20~8.2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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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rocks, light jet print, 2012
길가에 뜬금없이 돌 두 개가 놓여져 있다. 비교적 커다란 바위인데 왜 그 자리에 그 돌이 놓여있는지 의아스럽다. 버려진 돌인지 방치된 돌인지 구분이 않가는 것이다. 그래도 분명 누군가에 의해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질주하는 차들과 사람들이 드물게 다니는 그 사이에 위태롭게, 무심하게 놓인 두 개의 돌을 우연히 발견한 작가는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이성희, No.9(broken stones), Light jet print, 2012
저쪽으로 녹음이 우거진 숲이 있고 그 사이에 전봇대 하나가 직립해서 전선줄을 지탱하고 있다. 차선이 그어진 도로와 시멘트로 발려진 인도 사이에 정원석처럼 돌은 자리하고 있다. 무슨 설치미술을 보는 것도 같다.
이우환이 철판위에 올려놓은 돌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설마 이우환의 작업은 아닐 것이다. 두 개의 돌은 서로 마주하고 있고 각기 그림자를 거느리고 침묵 속에 마냥 고요하다. 알다시피 옛사람들은 돌, 특히 괴석을 사랑했고 그 돌이 지닌 미덕을 흠모해왔다. 돌은 오랜 시간을 함축하고 있고 최후의 얼굴 하나를 단호히 간직하고 있는가 하면 불변과 침묵, 고요와 장수를 뜻한다. 그래서 군자를 지향했던 선비들은 그 돌과 같은 인품과 덕목을 내재화하고자 애썼다. 수석을 수집하고 삶이 언저리에 돌을 갖다놓고 완상했으며 괴석화를 즐겨 그리고 감상해왔다. 그런 수석취미나 완상의 문화는 근대 이후 급속히 형해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전통이 그렇게 쉽게 소멸되는 것은 또한 아니다. 여전히 수석취미와 돌에 대한 의미부여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성희, No.2(flowering plants), Light jet print, 2012
이성희는 어느 날 길가에서 우연히 이 돌을 발견했다. 자신의 삶의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문득 접한 돌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소소한 사물의 초상은 참으로 볼품 없고 초라하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것 같은 이 돌은 그러나 그 돌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이 돌을 발견한 이에 의해 비로소 돌은 생기와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사실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 방식 따라 그 외연이 달리 보일 뿐이다.
이성희, No.5(the shade of a tree), Light jet print, 2012
작가는 우연히 그것을 지나치다가 자꾸 눈에 들어온 그 돌을 촬영했다. 이상하게 자신의 시선을 붙잡은 돌에 대해 사유한 것이다. 이 바라봄은 돌이란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 내부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작가는 말하기를 “이 바라봄이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나의 상실을 혹은 내 연민의 시선을 대신하는 듯하기도 하다. 무심한 듯 외면하려 했지만 왠지 가슴이 슬쩍 긁힌 듯한, 둔한 쓰라림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가, 다음에 마주할 땐 작고 묘한 들뜸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성희, No.7(things), Light jet print, 2012
알다시피 사진 찍는다는 행위란 스쳐 지나치거나 무시될 수 있었던 사물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특별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 사물이 들어옴으로써 매우 평범한 그 일상적 사물은 비로소 시각적인 의미를 지닌 특별한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진정한 공부를 ‘격물치지’라 일컬었다. 나는 그 말이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결국 이 작가의 사진 찍는 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성희는 사진 찍는 일을 통해 격물치지를 수행하고 있고 또한 우연히 발견한 돌을 관조하면서 그 돌이 지닌 우리네 문화적 전통의 한 자락을 곰곰이 곱씹고 있는 것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