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김환기의 달항아리와 매화그림-매화꽃이 있는 정원 장소: 환기미술관 전시기간 : 2012.07.13 - 2012.09.16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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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를 유독 사랑했다. 유교적 이념을 신봉했던 그들에게 매화란 특정 식물이기 이전에 군자의 덕목을 표상하는 존재였기에 이를 늘상 가까이 했던 것이다. 완상하고 즐겨 그리는가 하면 그 도상을 일상곳곳에 수놓았다. 비록 근대에 들어와 사군자는 이전처럼 즐겨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 속에 즐겨 환생하고 있다.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매화꽃이 있는 정원’전은 김환기의 매화그림과 함께 조선시대 매화도, 그리고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매화그림까지 아우르고 있다.
나로서는 옛그림 속의 매화와 수화의 그림이 역시 좋았다. 알다시피 수화는 문인화의 전통을 서양화 양식 속에 되살리고자 했던 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때부터 고미술에 심취했고 이후 해방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지속해서 백자와 매화 등을 즐겨 그린 이다. 가장 한국적인 대상들을 찾아내어 자기의 예술세계로 정착시켜나가고자 했던 그는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 도자기와 목공예를 수집, 완상했고 이후 자연스레 작품에 백자나 목기와 같은 구체적 소재를 다루었다.
김환기는 특히 백자의 흐름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발견했으며, 그러한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고유한 미의 원형을 탐구한 이다. 비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꽉 차 있는 ‘불가사의한 형태’에서 한국의 미가 지향한 어느 완숙의 경지를 새삼 목격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궁극적인 미의 양식은 조선조 백자와 목기와 같은 우리의 문화유산 속에서 다시금 찾아진 것이었다.
특히나 조선 백자에서 지고의 아름다움을 만났고 그 자연스러운 미감, 무기교적인 미가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미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고유한 정서를 만났고 이를 조형화하고자 했다. 그 백자와 함께 매화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매화는 으스름한 밤의 달빛 아래 보는 것이 제격이라 달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수화는 달항아리와 매화를 함께 그렸다.
단순하게 도상화 하고 간결하게 추려낸 형태, 환한 백색과 투명한 블루 톤이 두툼하게 깔린 화면에는 터질 듯한 백자의 포름과 아담하게 작은 매화가 팝콘처럼 피어있는 풍경이 무척이나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김환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백자들은 흰색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섬세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백색계통의 색조로 무한한 변주를 거듭한다. 그의 백자 항아리 그림은 조선조 항아리의 독특한 특징을 간결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변형시키고 특징을 과장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김환기는 백자의 포름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발견했으며, 그러한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고유한 미의 원형을 탐구해갔다. ‘비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꽉 차 있는 이 불가사의한 형태’에서 한국의 전통미가 지향한 어느 완숙의 경지를 홀연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조형과 미와 민족을 우리 도자기에게서 배웠다고 당당하게 말해왔다. 옛선비들의 격조 있고 문기어린 매화도 역시 그에게는 매력적인 것이었기에 이 둘을 결합시켜 그려낸 것이다. 지금 보아도 그 은은하면서도 운치 가득한 매화꽃과 달항아리그림이 더없이 좋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